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몇 년 전 몸에 이상을 느껴 몇 가지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결과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내 생활의 중심을 스트레스 관리에 두었지만, 그것을 혼자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라고 부르는 것은 외부 요인에 대한 개체의 반응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 요인은 스트레서라고 한다. 스트레스 관리가 어려운 것은 스트레서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나의 슬기로운 감정생활’이라는 책에서는 스트레스가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감정이 문제라고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도파민이나 세레토닌, 옥시토신, 엔돌핀 같은 행복 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긍정적 반응을 선택하라고 조언해준다.

그러나 도파민이나 세레토닌, 옥시토신,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나오는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라고 해서 우리가 보통 말하는 부정적 스트레스와는 상황이 다르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 갈고닦은 실력을 뽐낼 연주회를 앞둔 연주자, 기록을 깨고 싶은 암벽 등반가 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이다. 반면에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는 직장인,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해야 하는 수험생, 시댁과의 갈등에 힘들어 하는 며느리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디스트레스 상황이다. 이런 디스트레스 상황에서 긍정적 감정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유스트레스로 느끼는 사람이 있고, 디스트레스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도 디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로 전환시키기는 어렵다. 그래도 여러 이완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낮출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쉽지는 않다. 이미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개체는 스트레스를 조절할 힘을 상실한 지 오래됐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심각한 디스트레스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는 않다. 원시시대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야생동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죽음은 아니다. 사회적인 죽음 역시 생물학적인 죽음만큼 두렵다. 그렇게 사회적인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결국 몸에 이상을 느낀 후에야 알게 된다. 이미 몸에 이상이 온 후에는 산책하기, 명상하기, 잠 잘자기, 영양가 있는 음식 먹기 등 여러 스트레스 해소책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이다. 몸의 힘도, 마음의 힘도 소진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독자 여러분의 스트레스가 가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과도한 스트레스로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자주 점검해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몸에 이상을 느낄 정도로 진행이 되었다면, 이런 자가 치유서를 읽느라 애쓰지 말고, 당장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