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선율로 아웃사이더의 손을 잡다
오케스트라 선율로 아웃사이더의 손을 잡다
  • 등록일 2020.11.18 19:24
  • 게재일 2020.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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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문화예술교육 돕는 ‘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 박향희 단장

1999년에 사단법인 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한(전문예술인 2호) 박향희 단장을 만났다. 그녀를 만난 곳은 문화파출소이다. 그녀는 경찰들이 떠난 빈 파출소를 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공간으로 바꾼 문화보안관이기도 하다. 파출소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했다는 발상이 대단히 창의적이다. 2016년 문화체육 관광부와 경찰청이 협업을 통해 도원치안센터를 문화예술치유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변화 과정의 중심에 박향희 소장이 있다. 그랜드오케스트라의 단장이라는 막강한 지위가 있지만 문화파출소에서만은 ‘소장’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5년 전에 그녀는 문화예술 교육이라는 아이템에 대한 공모를 통해 막강한 지원 인파의 벽을 뚫고 문화보안관으로 낙점이 되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교육활동에 오래도록 몸 담아오는 동안 문화예술 강의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자신감이 그녀를 그 자리에 우뚝 서게 했다.

“문화파출소는 어떤 곳인가요? 올바른 개념을 일러주시겠어요?”

“문화예술교육 인구 저변확대를 위한 공간입니다. 클래식 악기강좌와 서예, 꽃꽂이, 캘리그래피, 다도 수업 등의 다양한 문화강좌로 코로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목공예와 바리스타 교육, 각 나라별 특별한 요리강좌로 일상의 새로움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1999년 제자들과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단
녹향 헌정음악회·베르디 페스티벌 등 참가
27년동안 연말마다 가족연주회도 개최해 와
5년전 도원치안센터에 개설한 문화파출소서
클래식 악기·서예 ·다도·바리스타 과정 등
다양한 문화강좌 운영하며 문화예술치유 앞장
“인간이 함께할 수 있는 최고 문화자산은 음악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끌어가요”

시민의 안전을 지키던 경찰 대신에 예술 강사들이 와서 주민들을 위한 강의를 하고, 사무실과 당직실, 민원실로 쓰던 방을 강의실 삼아서 어린이들에게 바이올린과 첼로를 가르치고, 어린이 명예 연주단을 발족해서 합주도 한다. 파출소의 원주인이었던 경찰이 주민들의 생활안전을 도왔다면 문화파출소는 음악으로 지역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점이 조금 다르다. 공권력이 음악으로 바뀌었을 뿐, 주민들의 치안본부센터라는 본래의 의미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5년이면 어느 정도 성과를 타진해봄직 한데, 어떤가요?”

“처음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내고 있어요.”

그녀는 문화지킴이가 되면서 달서구로 이사를 오고, 주민자치위원회와 환경단체에 참여하며 함께 활동을 했다. 그분들에게 문화파출소가 어떤 곳인지 알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어느 때고 자신은 잠시 경영을 하다 훌쩍 떠나면 그만이지만, 나중에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문화파출소를 운영해나갈 때를 대비해서 기초를 단단하게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며, 그녀는 문화파출소 초대 소장으로서의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교육지침이 뭔가요.”

“문화 저변 인구를 확대한다는 생각으로 클래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예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어릴 때 접촉한 문화가 어른의 인성을 만들어 가니까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문화를 접촉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공예, 치유,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위해 심리치료, 다도 수업을 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얼굴을 익히며 활동하다 스스로도 몰랐던 재능을 발굴해서 주민강사가 되기도 한다. 재능 활용은 참으로 바람직한 방안이다. 문화파출소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출구가 되어 그 활용도를 높인다면, 문화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 되니 개인적으로도 보람이 클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느 누구든 자신의 재능을 내보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득을 떠나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계기가 될 터이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사는 건 자신의 삶에 가치를 더함과 동시에 지역주민을 돕는 충만감을 얻게 될 것이다.

“문화파출소를 지키는 인원이 몇 명이에요?”

“저를 포함한 예술 강사가 30명이지만 간혹 외국인 예술가를 초빙하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이 강사로 참여하기도 해요.”

“교육의 효과나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시는지요.”

“저의 오랜 예술 활동과 교육 경험을 살려 한·일 교류음악회도 열고, 국내는 물론 유럽 정상급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공연기획도 합니다. 올해는 2020년 대한민국 어린이 청소년 페스티벌을 경주에서 개최했어요.”

삶에 음악을 가까이 하는 문화저변 확대를 위하여 경찰청과 협력해서 어린이 명예경찰 연주단을 만들고 음악으로 사회경험을 하게 해준다. 3호선 모노레일에서 연주회를 갖고, 버스킹으로 거리음악회를 열기도 했는데, 이즈음에는 어린이 연주단의 초청공연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어릴 때 접촉한 문화는 곧 인성이 된다.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문화 접촉의 다양한 기회를 주자고 말하는 박향희 단장.
어릴 때 접촉한 문화는 곧 인성이 된다.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문화 접촉의 다양한 기회를 주자고 말하는 박향희 단장.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가 있을 텐데요.”

“녹향 헌정 음악회, 전국투어, 베르디 페스티벌 초청공연 등 큰 보람과 사명감을 느끼게 해준 연주가 많았죠. 매년 연말마다 가족 연주회를 가지는데, 27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연을 했어요. 최고의 연주를 위해 대성그룹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어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올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했다고 그녀가 슬쩍 자랑스러움을 내비친다. 열 번 중에 한 번만 실패해도 나머지 아홉 번의 수고가 날아가기 때문에 마지막 공연을 마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꽉 짜인 연주 일정에, 문화파출소까지 운영하고 있는 박 단장이 큰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일을 하자면 예산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으니 대구시에서 주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틈만 나면 협연을 위해 뛰어나간다. 그녀에게는 책상이 따로 없다. 보안관 일을 하며 기획과 섭외 메세나 운동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운영에 바빠서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어떤 철학으로 일을 하세요?”

“내가 가진 재능이 음악이고, 그 재능을 활용하는 게 음악을 하는 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질적 삶의 가치를 높이는 거예요.”

음악은 인간이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자산이고 그걸 최대한 활용하는 게 그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오케스트라와 문화파출소 일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고 가장 행복해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며, 경제적 출혈이 심해서 어려움도 많지만 그녀는 스폰서의 지원만 바라보기보다 뛰어다니는 쪽을 택한다. 그게 음악가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대구의 음악 수준이 어떤가요?”

“낮아요. 지역성이 너무 강한 게 방해가 되고 있어요. 더 좋은 음악회를 열어서 누구나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중요해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단조로 된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뒤늦게 어려움을 많이 겪다 보니 자신의 감성에 한이 많은 걸 느낄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심리적 슬픔을 달랜다며 쓸쓸히 웃는다. 개인적으로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한단다.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 문호가 개방돼야 인재가 자랄 수 있고, 문화를 접촉하는 사회적 안목도 바뀌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오케스트라 단장을 하게 되었어요?”

“제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실내악 공부하듯이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단원들이 많아지게 되어 지금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되었어요. 할아버지가 많이 응원해주셨고 기를 살려주셨어요.”

경험 부족으로 마흔이 넘어서 삶의 위기에 부닥쳤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손을 잡아준 지인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음악적 철학과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녀를 끊임없이 응원해준 지인들이다. 언젠가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음악회를 열고 싶다고 한다. 기존의 음악계에서 보면 그녀는 분명히 아웃사이더이고, 기댈 곳 없이 혼자 처리해야 할 일을 산더미처럼 앞두고 있으니 그 외로움을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다 해도 그녀는 문화파출소를 운영하며 세상이 점점 맑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직도 그들만의 음악회가 되어 있는 게 안타깝다며, 타성에 젖어 있는 부분을 떨치고 새로운 인물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너무 무난하게 안정권에 머물려 하다 보니 좀처럼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는 지적이 따갑다.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 문호가 개방되어야 인재가 자랄 수 있고, 문화를 접촉하는 사회적 안목도 바뀐다고 한다. 그녀는 오너로 활동하고 있지만 자신도 보호받고 싶고, 기대고 싶다며, 스스로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칭찬해준단다.

“박향희, 너 정말 잘하고 있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야.”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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