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경주의 재발견-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초청강연회서 제안
“황룡사와 9층목탑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구현할 수 있다면
7세기 ‘서라벌의 밤길’ 걷고 싶은 사람들 몰릴 것”
인문학·자연과학 결합으로 역사 유적 복원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

68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 대학 담벼락에 붙었던 격문이다. 역사학과 철학에 공학과 IT기술이 결합하고 여기에 상상력까지 더해진다면 신라의 유적과 유물은 어떤 모습으로 현대인들 앞에 나타날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지난달 31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주의 재발견-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초청강연회에서 기발하고 흥미로운 상상 하나를 이야기했다.

“지금으로선 복원이 힘든 황룡사와 9층목탑을 해가 진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홀로그램(Hologram·3차원 입체 영상)으로 떠오르게 하면 어떨까? 한국의 기술력이라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황룡사는 진흥왕, 진평왕, 진지왕, 선덕여왕 등 4명의 왕이 93년에 걸쳐 만들어낸 신라의 대표적 사찰 중 하나.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던 백제에서까지 기술자를 초빙해 만들었다는 높이 80m의 거대한 목탑이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주시 구황동에 절터만 남아있을 뿐.

문화재의 복원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다. 성급하게 손을 댔다간 일을 망치기가 쉽다.

1400년 전 서라벌의 ‘랜드마크’였을 황룡사 9층목탑은 현재로선 제대로 된 복원이 불가능하다. 왜냐? 당장 거기 사용될 8톤 트럭 2천600대 분량의 금강송(金剛松)이 한국에 없기 때문.

유홍준은 문화재청장 재직 시절 전통 목조유물 복원을 위해 울진 지역에 150만 평에 이르는 소나무숲 조성을 제안해 실행했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그러나, 그 소나무들이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려면 앞으로도 10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첨단 기술을 이용해 황룡사와 9층목탑을 고풍스런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밤의 경주’를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유홍준의 상상력은 그 발상이 신선해 보인다. 만약 이 상상이 실현된다면 7세기 서라벌의 밤길을 걷는 행복감을 맛보려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게 분명하다.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니면 포스텍과 카이스트 등에서 공부하는 젊은 공학도들과의 만남은 거부하지 않는다는 유홍준 전 청장.

거기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역사 유물을 복원해보자는 뜻이 깔려 있다. 발전된 기술력은 때때로 인간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도 하기에.

100년을 사는 인간은 극히 드물다. 그러니 이 기사를 읽는 절대다수는 금강송으로 복원된 9층목탑을 볼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황룡사와 목탑은 적절한 재정 투입과 기술 개발 노력이 있다면 몇 해 뒤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앞서도 말해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상상력’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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