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br>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권위주의’와 ‘권위’는 완전히 다르다. 소위 ‘진보’와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는 바로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권위’까지 무너뜨린 일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흔한 말 중에 “요즘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푸념은 참이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그 치명적인 만행은 점점 더 광기(狂氣)로 치닫고 있다.

지난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윤석열 드라마’는 생방송 시청률 9.91%를 기록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윤석열 드라마’의 결정적 흥행요인은 불과 1년여 전 ‘윤석열 찬가’를 부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똑같은 입으로 마구발방 물어뜯는다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적 요소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외압사건을 폭로할 당시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록한 윤 총장은 이번에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면서 한낱 자신을 졸개 취급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례에 대한 통쾌한 카운터블로였다.

적지 않은 법률전문가들이 추 장관의 5가지 실정법 위반을 적시한다. 검찰청법 제8조에 명시된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 추 장관 수사지휘권의 권원(權原)이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처리 방향 지휘가 아니라 아예 총장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게 법조계의 보편적 해석이다.

수사지휘권 박탈은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다. 검찰청법 제37조 ‘징계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검사가 해임, 면직, 정직 등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과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도 위반했다는 견해마저 분분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수사지휘권 횡포가 일상화된다면 이 나라는 ‘검찰독립’이 완전히 무너진 독재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입버릇처럼 쓰는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사법기관의 사유화’를 뜻하는 사탕발림이고, ‘검찰 개혁’이라는 말은 ‘검찰 장악 음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다.

‘윤석열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검찰청사 앞에 줄지어 선 100여 개의 화환은 결코 즐거운 풍경이 아니다. “(나만 빼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어법(反語法) 괄호 부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윤석열은 ‘바보’라는 야당 정치인의 야유는 차라리 슬프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검찰독립’의 미덕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불문법적(不文法的) 관례였다. 그러나 이제 이 정권이 오래된 전통을 붕괴시키고 있다. 삼권분립을 망가뜨린 정권의 하수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온갖 ‘중상모략’으로 멀쩡한 검찰총장의 ‘권위’를 파괴하며 검찰권 찬탈을 음모하고 있다. 백전노장 ‘윤석열’의 다음 드라마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