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내리며
풀을 내리며
  • 등록일 2020.09.22 20:19
  • 게재일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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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석이 가까워지면 으레 하게 되는 것이 벌초(伐草)다. 벌초란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이나 나무를 베어내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일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의 성장이 거의 멈추기 때문에 추석 때의 성묘를 위해서 묘를 깔끔하게 미리 손질을 하게 된다. 일부 지역에선 벌초를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또한 안동지방 등지에서는 ‘풀을 내리는 것’이라 하여 경건한 손길로 묘소를 다듬으며 정성을 다했다.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효행이자 후손들의 책무라 여겼다. 북망산천에 계시지만 조상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예우하였기에, 묘소가 함부로 방치되거나 흉해지지 않도록 후손된 도리로 해마다 깨끗하게 관리해왔다. 그래서 수년 간 벌초를 하지 않으면 자손이 없는 묘로 여기거나 또한 후손이 있음에도 벌초를 하지 않는 행위는 불효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풍속은 조상의 덕을 생각하여 제사에 정성을 다하고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나와 내 가족이 있고 자손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도 모두 조상이라는 근원이 있고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 가는 능선/솔숲에 튼 둥지 있어/먼 산 큰 품에 안긴 안도의 칩거인가/생시의 도도한 말씀/석간수(石澗水)로 푸시네//반 평생 눈물 언덕/까만 동공 등불로/속절없는 이승길 버린 듯 가신 자리/한 움큼 익모초 줄기/서걱이며 손젓네/’ -拙시조 ‘풀을 내리며’ 중(1990)

지난 주말, 올해도 어김없이 풀을 내리고 왔다. 연례행사처럼 한 해도 빠짐없이 그렇게 참여해온지 어언 35년여, 예전에는 주로 낫으로 힘겹게 벌초를 했었지만, 요즘은 거의 예초기라는 풀 베는 기계를 이용해 비교적 손쉽게 하는 편이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형제나 사촌들이 약속처럼 모여들어 공동으로 벌초작업을 벌이니 우애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벌초 후 대부분이 추석 때의 성묘를 겸해 잔을 올리면서 조상을 추모하고 섬기는 마음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니 벌초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바쁜 도시인들이 벌초할 시간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행업체에게 벌초를 맡기기도 한다.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예초기의 보급과 함께 벌초대행업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벌초를 하기 위해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힘겹게 작업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요즘같은 비대면 시기에는 고향 방문을 미루거나 직접 벌초를 포기하는 경향이 많아져 벌초대행이 예년에 비해 30~40% 급증하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해 벌초 풍경도, 명절 채비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맘때면 시골이나 도시 어귀에는 고향 방문을 반기는 현수막이 즐비했었는데, 오히려 귀성과 이동을 자제해달라는 글귀가 걸리니 묘한 느낌이 든다. 또한 온라인 성묘, 화상 차례 서비스 등의 생소한 성묘, 제례문화로 살가운 일가친척 간에도 틈과 거리가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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