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에 느릿느릿 여유를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TV 프로그램 ‘여름 방학’. /tvN  제공
코로나19 시대에 느릿느릿 여유를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TV 프로그램 ‘여름 방학’. /tvN 제공

많은 이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19를 두고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겪고 있다. 사소한 일에도 자극을 받아 울컥하거나,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주 체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는 몸의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던 때에는 내면의 침잠이 한꺼번에 부서지려는 듯 휘청였다. 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쫓기듯 들자 홈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고,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쉽게 무료해졌다.

‘쉼’은 어렵다. 그동안 열정이라는 이유로 욕심껏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데에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쉬고 싶단 이유로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결국 그간 쥐고 있던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마음 깊은 곳에 이고 진 짐들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방해를 받는다. 최근 유튜브를 보며 가벼운 요가 자세를 따라 하기 시작했지만 집중력이 모자라 빈번히 무너졌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도 문제였지만 습관처럼 따라오는 잡생각은 왜 이렇게 물리치기 어려운지. 유튜브 속 요가 선생님은 이마 위에 작은 점을 그려서, 그 점을 일정한 힘으로 응시하며 자세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 작은 점 하나도 그리기 어려워 시계를 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그러다 휴대폰을 쳐다보기 일쑤였다. 결국 적당한 쉼은 무엇이고, 어떻게 행해야 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티브이 속 ‘여름 방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두 배우는 아주 느릿느릿 여유를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 속 오래된 집을 개조해 여행 같은 삶을 즐기는 이들은, 꼭 필요한 물건만을 그때그때 사서 쓰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life)’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것을 일컫는다.

가장 적은 물건으로만 살아가는 것. 문장만 보면 쉬워 보이나 사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내 몸 하나 존재하는 공간이 너무 많은 사물과 관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름 방학’은 떠들썩한 움직임도, 큰 사건도, 반전도 없는, 오롯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잔잔한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접 시장이나 마트에 들려 식자재를 고르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많은 시간이 들여야 하는 일을 행하고, 졸음이 몰려올 땐 잠을 잔다. 이외에도 평소 배우고 싶었던 빵 만들기 기술을 익히거나 서핑을 배워 파도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동안 하루가 끝나면 그림으로 자신의 하루를 기록한다. 나무 책상에 앉아 색색의 연필을 들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듬더듬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고민 없이 지냈던 어느 평온한 나날을 자연스레 떠올려보게끔 한다.

최근 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언택트(untact) 예능’을 택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은 시골 마을로 찾아가, 집에서 머무르는 시청자에게 실제로 여행을 하는 듯한 자연경관과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실제로 여행을 하진 않지만 화면 속 느릿한 일상과 거대한 자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바퀴 달린 집’은 커다란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 속에서 하루를 살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한적한 시골에서 물멍(물속에서 멍하니 넋을 놓거나), 불멍(불을 보며 멍하니 넋을 놓는) 등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게스트와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제한된 물을 쓰고 간소화된 물품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실현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듯, 그저 먹고 이야기하고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장면뿐인데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시 미니멀 라이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쉼을 위해서는 마음 비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 안을 살폈고, 쌓인 어마어마한 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나에게 꼭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지만 가지고 싶은 것’, ‘폐기해야 할 것’이라 적은 3개의 상자를 나란히 두고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정말 내가 이걸 다 산 걸까? 싶었던 건, 책이었다. 일 년 전 이사를 하면서 많은 책을 처분했지만 아직도 집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쓸 때 필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소중한 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고른 책이었는데 등등. 한 가지의 물건 속에는 불명확한 목적, 그때의 기분이나 시간, 기억 같은 게 들어있어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씩 비우니 보이는 게 있었다. 생각보다 입지 않는 옷이 많았고, 필요 없는 책은 끈으로 묶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현재 생활 습관에 맞춰 가구를 재배치하여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남은 옷은 몇 벌 되지 않아서 모두 옷걸이에 걸어두고, 양말과 수건은 색깔별로 잘 개켜 서랍 안에 세로로 줄 맞춰 넣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기사문, 동아리 일지, 의미 있는 편지, 신춘문예 기간에 시를 보내고 받은 우체국 영수증 등 내게 많은 것을 안겨다 준 물건들이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래전에 받은 게 많아서 이미 프린트나 글씨가 벗겨진 것도 많았다. 좋은 노하우를 참고해 작은 크기의 종이는 속이 비닐로 된 파일 안에 집어넣어 정리하였고, 다소 크기가 큰 종이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A4 용지의 크기로 뽑아 파일 안에 넣었다. 많은 종이와 인쇄물이 한 권의 사진첩으로 정리되자 책장 속 딱 한 칸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필요한 자리에 알맞게 위치하는 것. 그 적당한 위치와 무게가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19로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면서 충만을 누리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산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고 나니, 소비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고 대체 용품을 찾게 되었다. 이제 조금씩 실천하고 있지만,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물건을 고를 때 5년 정도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또 손수건을 사용하여 휴지 사용을 줄이거나, 장바구니 사용으로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던가, 식당에서 먹지 않는 반찬은 미리 말해두는 등 실천 가능한 습관을 생각해보고 있다.

비워지는 물건의 이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은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움직임을 실천하고 있었다.

제로웨이스트는 일회용 포장재, 완충재 등의 사용을 줄이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사회 운동이다. 많은 클렌징 용품을 대체해 천연 비누를 쓰거나, 세제나 섬유유연제 대신 ‘소프넛’을 대체해 사용한다. 소프넛은 솝베리나무(soapberry·무환자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수질오염, 환경오염 없이 생분해되는 천연 계면활성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또는 비닐봉지를 줄이기 위해 매립 후 90일 이내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생분해 봉지를 사용한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물티슈 또한 생분해 행주로 대체하고 플라스틱 빨대는 소독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를 쓴다. 그간 행하던 습관들을 한 번에 고치기는 어렵다. 계산 후 영수증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받지 않거나 텀블러 사용, 다회용 장바구니 사용, 생분해되는 대나무 칫솔을 쓰는 등의 작은 실천부터 해볼 수 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불필요한 것을 구매하지 않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활을 채워 넣을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줄이면서, 아주 최소한의 물건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삶도 있다.

비워낸다는 것은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환경을 위해 함께 상생하자는, 같이 살아가자는 건넴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온전히 마음에 꼭 드는 것으로만 채우고,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는 법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다.

세상은 시끄러우나 내 안의 고요는 비워둔 곳에서 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태도나 자세를 느린 시간 속에서 선명히 그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반듯하게 지키며, 무해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