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십서(武經十書) 장원(將苑)의 교훈
무경십서(武經十書) 장원(將苑)의 교훈
  • 등록일 2020.09.21 20:00
  • 게재일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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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문인사대부가 권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학자가 천하를 다스렸기에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유가경전을 읽어야 했다.

그러나 천하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문관만 있어도 안 되기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인 무관을 뽑기 위한 무과제도가 중간에 등장했던 이유다. 무인 선발을 위한 무거(武擧)제도를 만든 사람은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다. 그의 치세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기에 시호에 무(武)가 들어간 배경이다.

송나라에 와서 무술뿐만 아니라 무경(武經)에 관한 시험이 덧붙여져 이른바 역대 병서인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울료자(尉<7E5A>子), 육도, 삼략, 당리문대가 무경칠서(武經七書)로 정리된다.

이 용어는 11세기 말 북송의 원풍 연간에 기존의 병서를 무학으로 정리해 무과의 시험과목으로 채택한 데서 비롯됐다.

문과시험이 사서삼경의 7개 과목으로 정리된 것과 짝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후에 무경칠서에 손빈병법, 장원, 삼십육계를 보태어 중국의 10대 병법서인 ‘무경십경’이 탄생된다. 이 병서들은 명나라를 거치면서 병가(兵家)의 기본 경전으로 자리 잡아 해설서와 묶어 출간하는 것이 유행했다. 조선도 그 영향을 받아 문종 때 수양대군 주관 하에 ‘무경칠서주해’를 펴냈다. 현재 일부 대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으나 아직 영인본이나 번역본이 출간된 적은 없다.

무경십서는 하나같이 ‘장수가 용병을 잘못해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의 존망이 갈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무경십서 중 제9서인 장원(將苑) 제1편 논비(論備), 제7장 장지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라’는 기록이 있다. 장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의지를 ‘이신순국’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에 남긴 마지막에 쓴 글귀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다. 위국헌신에 군인본분을 첨언하여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라고 강조했다. 110년 후 추미애 장관 아들이 병영생활에서 엄마찬스로 반칙과 특권을 누렸다는 야당의 의혹제기에 여당 원내대변인은 추 장관의 아들이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했기에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런 기가 막힌 발상을 가진 부류들이 떼 지어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를 왜곡시키며, 독립투사들의 명예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원’은 지휘관이 군대 내에서 지켜야 할 역할과 품행, 병사지도와 작전실행 시 주의할 점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어 무경 중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는 병법서다.

군인 혼이 사라진 가치 없는 별을 달고 개인영달을 위해 권력층의 눈치나 기웃거리며 말잔치로 얼룩진 해바라기 정치군인들은 오천만 국민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군복을 벗고 야인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1910년 경술치욕의 그림자가 또 다시 이 땅에 스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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