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공자는 도(道)를 일러 ‘솔선해서 행하는 것’이라 했고, 정(政)은 곧 ‘법제와 금령’을 뜻한다고 했다. 또 형벌을 주어서 균일하게 만드는 제(齊)에 치중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어진다(齊之以刑 民免而無恥)고 경계했다. 법(法)은 야만의 시대, 무질서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인류에게 가장 유용한 도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법이 과잉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무치(無恥)한 인간들이 양산되고 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국 사태의 논란들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법정에서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뜻밖으로 ‘법꾸라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조 전 법무장관의 아들 가짜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를 받는 최강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경심 교수 모자가 200회에 이르는 모든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앞서 조국 장관 자신도 정 교수 재판에서 303차례나 형사소송법 148조 근친자의 증언 거부권을 들어 증언을 거부했었다.

해석은 의외로 쉽다. 형사재판은 기준이 엄격해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아무리 혐의가 짙어도 무죄가 나올 수 있다. ‘참말을 할 수도 없고, 위증의 죄를 무릅쓰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어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풀이가 정확할 것이다.

조국 일가의 ‘법꾸라지’ 행태는 일반 국민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몰라서 못 하고, 무서워서도 못한다. 수많은 피고인이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가 판사로부터 ‘개전(改悛)의 정이 없다’는 질책과 함께 괘씸죄까지 보탠 중형을 선고받고 있다.

조국 일가는 도대체 무얼 믿고 이렇게 하는 걸까. 자기들 세상에 새로 판이 짜진 법원의 판결을 믿기 때문이다. 야릇한 일은 벌써 시작됐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인 서울중앙지법 김미리 재판장은 조국의 동생 조권 씨에게 웅동학원 교사 채용시험지 유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은 정말 중요한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이다.

조 씨 혐의의 핵심은 거짓 공사대금 채권 확보 명목으로 가족끼리 짜고 치기 소송을 벌여 웅동학원에 115억 원 손해를 끼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교사 채용 지원자 두 명에게 시험지를 빼주고 뒷돈 1억4천700만 원을 받은 것도 시험지 유출만 유죄고 뒷돈은 무죄라고 판시했다. 돈 심부름한 사람은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는데, 시키고 돈 받은 사람은 무죄라니 참으로 해괴한 판결이다. 이제 어떤 가당찮은 일들이 펼쳐질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나, 최근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논란을 보면서 이 나라가 여전히 초엘리트를 자처하는 성층권 ‘법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법꾸라지’ 공화국임을 새삼 절감한다. ‘불공정’에 눈물짓는 민심은 아랑곳없이 ‘불법’만 아니면 된다며 뻗대는 지도층 위정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에 넌더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