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끝에서 생생히 다시살아난 문학의 공간은…
펜 끝에서 생생히 다시살아난 문학의 공간은…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20.08.24 18:56
  • 게재일 2020.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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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이경재 교수 ‘명작의 공간을 걷다’
경북매일신문 ‘경북문학기행’
6개월간 연재물 책으로 출간

한국 현대문학 명작 39편 선별
작가의 공간·장소 실제로 답사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엮어

개화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작품
각 시기별로 균형감 있게 배열
올 1월부터 6개월간 경북매일신문에 연재된 숭실대 이경재 교수의 기사 ‘경북문학기행’이 한 권의 책이 돼 독자들 곁으로 다가왔다.
올 1월부터 6개월간 경북매일신문에 연재된 숭실대 이경재 교수의 기사 ‘경북문학기행’이 한 권의 책이 돼 독자들 곁으로 다가왔다.

문학의 ‘주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공간’은 평론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최근 출간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경북매일신문에 연재된 문학평론가 이경재 교수(숭실대 국문과·사진)의 ‘경북문학기행’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된 것.

책의 제목은 ‘명작의 공간을 걷다’(소명출판). 한국 현대문학의 명작을 공간과 관련지어 살펴본 저서로, 3년 전에 출판된 ‘한국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에 이어지는 저작이다.

‘한국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가 학계에서 논의되는 이론을 바탕으로 공간과 장소에 대한 학구적 탐구를 위주로 했다면, 이번 ‘명작의 공간을 걷다’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현장성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가능하면 작품이나 작가의 공간을 실제로 답사하여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이경재 교수의 설명. 또한 공간이나 장소도 ‘한국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가 국내를 비롯한 만주, 북경, 뉴욕, 삿포로, 이스탄불, 블라디보스토크 등 최대한 다양한 곳들을 아우르고자 했다면, ‘명작의 공간을 걷다’는 주로 국내의 주요한 곳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명작의 공간을 걷다’는 부드러운 한국 현대문학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저서다. 100년이 넘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대한 간략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저서가 되도록 집필했다는 뜻일 터. 이번 책에선 누구나 인정할만한 한국 현대문학의 명작 39편을 선별했으며, 그 정에서도 개화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한국 현대문학의 작품들이 각 시기별로 균형감 있게 배열될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평범한 독자들이 부담 없이 문학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원고지 25장 정도의 분량으로 작품이나 작가의 고갱이만을 간명하게 논의했다는 것이 필자와 신문사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산처럼 쌓인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겨자씨 만한 새로움이라도 보여줄 수 있도록 저자가 기울인 노력은 눈물겨울 지경.

이와 관련 이경재 교수는 “책 속의 문자는 어디까지나 차가운 흑백의 세계일 수밖에 없으며, 답사는 그러한 관념의 세계가 오감을 통해 총 천연의 세계로 되살아나는 마술 같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문학사의 이해를 위해 국내와 해외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분명 답사는 목적이 있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복의 순간들이라, 돌이켜보면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한 것인지, 여행을 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행복한 고백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문학답사가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어서 무언가 있으리라는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간 곳에서 푸른 하늘만을 실컷 보고 오거나,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차라리 오지 않았던 게 나았다고 후회할 때도 많았던 경험도 실려 있다. 문학과 글쓰기의 지난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경재
숭실대 교수

‘명작의 공간을 걷다’엔 무려 103장의 사진이 수록됐다. 그중 3장을 제외하고는 이 교수가 낡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들이다. 사료적 가치가 있는 과거의 사진이나 전문가가 찍은 예술성 높은 사진이 얼마든지 있지만, 현장에서 느꼈던 감각을 가능하면 진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록했다고 보면 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 머리말에는 이경재의 진한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다. 이인직의 오사카와 워싱턴, 장지연의 프랑스, 이광수의 북촌, 이상화의 수성벌, 백신애와 하근찬의 영천, 이효석의 봉평, 이육사의 안동 원촌, 한흑구가 사랑한 포항, 김동리와 박목월의 경주, 김사량의 도쿄와 가마쿠라, 서정주의 질마재, 조지훈의 주실마을, 김주영의 청송, 현기영의 제주, 최인호의 캘리포니아, 오정희의 차이나타운, 이문열의 두들마을, 성석제의 상주, 장정일의 대구, 김연수의 김천 등을 가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 단 하나 있다고 한다.

그곳은 바로 김동인을 낳고 기른 그리하여 ‘감자’를 낳은 평양. 그곳만은 가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직접 가본 후에 쓴다는 이 책의 원칙에 따른다면,‘감자’론(論)은 언젠가 보완돼야 할 미완의 글이라는 고백이다.

이경재 교수는 이 안타까움이 곧 사라져 진정한 한국 현대문학 연구가 가능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고백 안에 담긴 진정성이 눈물겹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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