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곳이다. 도승지는 승정원의 우두머리로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당상관 벼슬이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을 보좌하는 자리는 업무의 특수성으로 보아 반드시 필요했던 모양이다. 15세기 영국에서도 왕의 문서를 취급하는 사람을 비서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서의 영어 표기인 Scretary가 비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더불어 사회구조가 복잡화되면서 전문비서의 역할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의 경우 그룹 회장을 모시는 비서실의 비중이 크게 부상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비서직의 중요성을 고려, 비서학과가 등장한다. 이화여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비서학과를 개설했으며 지금은 전국 대학에 20여 개 학과가 개설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위층의 비밀업무를 취급하는 비서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모시는 분과 생활패턴을 같이해야 한다. 상사의 요구에 순종해야 하며 상사의 요구를 기록하고 미리 예측하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 업무 파악력도 좋으며 영어나 타이핑도 잘해야 비서직에 발탁될 수 있다.

그러나 상사보다 항상 먼저 출근해야 하고 퇴근도 늦다. 상사의 일에 보조를 맞추다보니 사생활이 많이 제약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비서직은 외견 화려해 보이나 개인적인 고통도 적지 않은 자리다.

비서직이 연이은 고위직의 성추행 사건에 휘둘려 수난을 맞고 있다. 비록 짧지만 사회과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비서학이 전문직 영역에서 대접을 못 받는 꼴이다. 비서직이 기관장의 사적업무나 돕는 사람 정도로 보는 그릇된 사회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때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