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논란 속에 마무리됐다.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박 시장에게 오랜 기간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장을 냈던 피해호소인의 모진 고통이 숙제로 남았다. 서울특별시장이라는 고위공직의 무게로 볼 때에서도 이 사건은 그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혼돈이 오더라도 제대로 정리해야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빈소를 취재하던 기자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노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라고 쏘아붙였다. 기자를 노려보던 그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쁜 (놈) 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내뱉었다. 이 짤막한 한 장면에 민주당의 처지와 심리가 상징적으로 들어있다. 기자의 으뜸 사명은 ‘예의’가 아니라 국민 알권리를 위한 ‘취재’다.

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과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 전우용의 부적절한 발언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현상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친여 성향의 네티즌들은 피해호소 여성을 향한 잔인한 2차 가해를 일삼고 있다. 보복성 발언에다가 심지어는 시장실 여비서를 관노(官奴)에다 비유해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다고 제사를 안 지내냐”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니 말문이 막힐 노릇이다.

희대의 살인바 ‘이춘재 사건’도 공소권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졌다. 박원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뭔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게 분명한 이 나라 지도층의 천박한 성인지감수성(性認知感受性)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피해자 측 변호인과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사실을 상세히 공개했다. 피해호소인을 조롱하는 악당들의 무참한 행위를 반박하는 “네 누이나 딸이 당했어도 그런 소리를 할래?”라는 일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해호소 여성의 처지가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