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칼’
법념 스님 지음·민족사 펴냄
산문집·1만3천800원

“열과 성을 다한 책이기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 장 한 장 곱게 펼쳐 잘 읽어 보면서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

경주 흥륜사 한주 법념 스님이 생애 처음으로 그동안 써 온 산문을 책으로 묵었다.

법념 스님의 첫 산문집 ‘종이 칼’(민족사)은 여느 수필가들의 수필처럼 구구절절 풀어낸 글이 아닌, 오랜 수행을 하고 나서‘익은’그만의 직관력과 예리한 감성적 언어로 쓰여진 글들이 산문이 아닌 장편의 대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책 제목은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는 동안 금강보검과 같이 백팔번뇌를 베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 제목을 ‘종이 칼’로 정했다.

“종이 칼에 베였던 상처가 양손에 보이지는 않으나 휴유증이 남아 있어 새 책이 오면 조심스럽게 다룬다. 혹여 베일까봐 두려워서다. 돌이켜 보니 종이 칼은 내게 자극제였다. 도전정신을 길러준 고마운 존재일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준 도반이라고 여겨진다. 더불어 삭도-면도칼도 지금껏 승려로서 정진할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이랄 수 있다. 칼은 남을 다치게 하지만 때론 베인 상처가 자극제가 되어 매사에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종이 칼’ 부분)

스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가까운 일상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지혜를 찾아내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며 성찰하도록 이끈다. 옛 과거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스님만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푸른 벚꽃은 인공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다. 벚꽃이 지는 게 아쉬워 연푸른 잎을 다시 피워 내다니…. 덕택에 봄을 두 번 느껴볼 수 있지 않은가. 연둣빛 새싹을 ‘푸른 벚꽃’이라고 표현한 발상이 신선하다. 그뿐이랴. 화려한 벚꽃과 견주어 푸르른 어린잎에 꽃만큼 높은 가치를 매겨주는 감성도 놀랍다.”(‘푸른 벚꽃’부분)

국화, 나리, 백합, 아기범부채, 매발톱 등 직접 꽃밭을 가꾸고 집 안에 화분을 기르는 등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며칠 새 잠포록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랜만에 해가 선을 보인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고 꽃들이 함빡 웃는다.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다림 끝에 맛보는 달콤한 기분이리라’는 어구에서 스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법념 스님.
법념 스님.

책이 저절로 읽히는 이유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순결하고 따스한 애정과 스님이란 오랜 사유를 해 본 자의 지혜로움, 그리고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의미가, 디디고 지나간 사람의 흔적은 없어지지만,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남아 도움을 주는 존재. 디딤돌 같은 은근함을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스님의 손 끝에서 한 글자씩 쓰여졌을 문장들이 때로는 아프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하얀 눈꽃 빨간 홍매화 같다.

1972년 혜해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한 법념 스님은 15년간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행했다. 1992년부터 10여 년 간을 일본에서 불학에 매진했다. 이번 수필집은 온전히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진작에 향곡 큰스님의 일화를 정리한 ‘봉암사의 큰 웃음’을 출간해 관심을 받았다. 취미로 했던 자수는 전시회를 열 정도로 빼어나다고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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