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필연적인 나와의 조우… 경주 보리사(菩提寺)
그것은 필연적인 나와의 조우… 경주 보리사(菩提寺)
  • 등록일 2020.07.06 19:55
  • 게재일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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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보리사. 보리사는 경주시 갯마을길 41-30에 위치해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에 보리사가 있다. 불국사 말사로 헌강왕 12년(886년)에 창건된 절로 남산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삼국사기에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서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폐사로 남아 있던 절을 1911년 비구니 박덕념 스님이 중창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수없이 화랑교를 지나다니면서도 산림환경연구원 뒤쪽 미륵골에 보리사가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접시꽃이 예쁘게 핀 작은 마을을 지날 때까지 보리사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왕대밭에 싸인 너른 주차장, 키 큰 적송들 품에 정갈하고 아담한 사찰 하나 앉아 있다.

“보리사, 이름부터 참 예쁘다.”

다행히 친구가 좋아한다. 소나무 아래를 걸으며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주제도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마음을 전한다. 그저 그런 나의 일상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새로운 기법에 열정을 쏟으며 재미를 붙이고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살아가는 친구가 오늘따라 더 젊고 아름다워 보인다.

부처님 계신 수미산을 오를 때면 무언가에 집착하고 서두르던 일상들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아서 좋다. 고만고만한 날들이 모두 감사할 뿐이다. 오늘은 친구가 여유를 가지고 멋진 영감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보리사로 향하는 우리의 걸음은 느리지만 소소한 것들로 행복하다.

깊은 역사에 비해 젊고 현대적인 당우들. 하지만 고도(古都)의 도시 경주에 어울리는 경관과 품격이 느껴진다. 대웅전의 반듯한 이마와 단아한 탑과 석등, 범종각과 요사채, 소나무에 둘러싸인 석불좌상까지 어느 하나 허술함 없는 짜임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친구가 나보다 먼저 합장 반배한다.

우리는 대웅전에 들르는 것을 잊고 정성스럽게 꾸며진 화단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원에는 누군가의 노고가 먼저 읽혀진다. 군데군데 수국이 주존불처럼 넉넉하게 자리를 잡으면 크고 작은 꽃들이 협시보살처럼 조화롭게 어울려 유월의 마지막은 한껏 풍요롭다. 주지 스님은 어떤 분일까?

절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하지만 생동감이 느껴진다. 덩굴을 뻗어 올라가는 호박꽃도 이곳에서는 어엿한 화초로 손색이 없다. 아침저녁 예불소리 듣고 자라는 꽃들의 맑은 낯빛이 탐스럽다. 무리 속에서 저마다 가치를 드러내는 저 구김 없는 자존감들! 서로의 향기에 어깨를 기대며 살아가는 꽃의 세계에도 부처님 말씀이 숨어 있다.

잘 생긴 소나무 숲 아래 보물 제 136호 보리사 석불좌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대좌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 보존 상태나 조각기법이 남산에 있는 불상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다. 주존불의 수인이 항마촉지인이라 석가모니불로 볼 수도 있고, 뒤편에 동쪽의 부처인 약사불을 배치한 것으로 보아 앞은 서쪽의 부처인 아미타불로 보는 견해도 있다.

천년을 견뎌온 불상은 어떤 아픔이나 회한의 흔적도 없이 연화좌대 위에 안정감 있게 앉아 있다. 인고의 시간들을 굳건하게 승화시킨 석불의 자비로운 미소 앞에서 누구나 두 손 모을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합장 삼배로 화답한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뒤늦게 대웅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요사채의 화려한 유리문이 붙든다. 거울처럼 반사가 심한 유리문에는 유월의 마지막 풍경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담겨 있었다. 그 광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순간 사진을 찍지 마라는 호통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굳게 닫혀진 반사유리에는 푸른 잔디만 눈부시다. 요사채를 향해 얼떨결에 두 손 모으며 사죄했지만 반사유리가 주는 묘한 구조적인 관계에서 나는 폭력성을 느끼고 말았다.

무안함과 동시에 불쾌감이 인다. 잠깐 문을 열고 훈계하였다면 훨씬 인간적인 따뜻함이 묻어났을 텐데.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저토록 꽃을 사랑하고 절을 정성스럽게 꾸민 주지 스님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절이 가진 정갈한 이미지와 경관이 싸늘하게 멀어져간다. 문턱 높은 절 앞에서 마음이 무겁다.

깨달음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보리사, 대웅전 법당은 부처님 계신 불단도 화려하다. 절의 재정 상태가 넉넉해 보인다. 원고료 중 일부를 불전으로 내오던 나름의 원칙이 잠시 흔들린다. 이토록 유치하고 조잔해지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탁하고 분별심 가득한, 너덜해진 마음 앞에서 잠시 참담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법당에서 백팔 배를 시작한다. 촉촉하게 몸이 젖어 올수록 마음은 평온해져 온다. 작은 바람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마음, 여전히 갈 길이 먼 나와의 조우는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법당을 나서는데 보리사의 경관은 첫 인상 그대로 정갈하고 아름답다.

요사채를 피해 돌아서 나오며 연화좌대에 앉아 있는 불상을 향해 두 손 모은다. 아무도 없지만 여전히 미소 짓고 있으리라. 궂은 날에도 흔들림 없이 지을 참다운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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