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 산타, 계단
스칼라 산타, 계단
  • 등록일 2020.07.01 19:54
  • 게재일 2020.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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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알림창이 뜹니다. 3년 전 오늘 날짜에 올린 당신의 글을 확인하세요.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방치해둔 온라인 공간에서 짧은 글과 함께 사진 몇 장이 보입니다. 로마 스칼라 산타 주변 몇 컷에다 헬레나 씨 부부에 대한 단상이 적혀 있습니다. 스쳐지나가든 오래 곁에 머물든, 따뜻한 인연들과의 시간은 늘 여운을 남깁니다. 정작 본인들은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낌새조차 의식하지 못하겠지만요.

여행에서 헬레나 씨 부부와 저는 같은 조원이었습니다. 초로의 헬레나 씨 남편은 차에 오르면 제일 먼저 일행의 간식이나 안부를 챙겼습니다. 내릴 때면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떨어진 쓰레기를 줍곤 했습니다. 좋은 것의 덤은 양보하고, 궂은 것의 덤만 갖는 게 몸에 밴 분 같았습니다. 그게 못마땅한 헬레나 씨는 잔소리를 했지만 그게 더 다정해보여 일행들은 웃곤 했습니다.

티볼리 숙소 근처의 난전부터 얘기해야겠습니다. 체리와 납작복숭아를 비롯한 과일, 올리브 무늬 원피스와 바람막이용 스카프 같은 입성, 느긋하면서도 활달한 현지인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인 감흥들이 넘쳐났습니다. 저토록 황홀한 풍경을 두고도 가이드는 호텔 밖 출입을 불허하겠답니다. 마감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 책임지고 싶지 않은 속내를 ‘해 저물면 위험한 곳이 여행지’라는 말로 에둘러 말했습니다. 밤이 오려면 멀었고,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저와 헬레나 씨는 어스름의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이국의 풍광에 너무 취했을까요. 눈 깜짝할 새 지나던 세단과 맞부딪쳤습니다. 헬레나 씨는 엉덩이를 차문에 부딪쳤고, 저는 달려드는 범퍼를 저지하느라 오른손목이 살짝 꺾였습니다. 중년의 운전사는 미안한 내색은커녕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멀어지는 차 꽁무니를 보면서 화가 나기보다 창피함이 몰려왔습니다. 외출을 삼가라던 가이드의 단호한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헬레나 씨와 저는 동시에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일탈의 벌로 얻은 상처와 난처함에 대해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이지요.

다음날 헬레나 씨가 말했습니다. 어제저녁 시장에서의 일은 입도 뻥긋 안 했어. 근데 내 얼굴빛이 안 좋았는지 남편이 자꾸 무슨 일 있냐고 물어. 걱정 마. 작은 고통에서 큰 기쁨까지 온 인류를 위해 기도했대.

그제야 전날 스칼라 산타에서의 헬레나네 아저씨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스칼라 산타’는 거룩한 계단이라는 뜻입니다. 저마다의 사람들은 ‘거룩한 계단’을 무릎걸음으로 오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의미입니다. 제 여행의 의미 가운데 하나도 그곳에서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대리석을 감싸는 나무 계단을, 이방의 여행객에 묻혀 천천히 기어오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심과 결과는 다른 법. 카메라가 무겁고 가방도 맡길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핑계를 대며 무릎을 꿇지도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무릎걸음용 오른쪽 계단 대신 도보용 중앙 계단을 선택해, 착실한 여행객들이 묵언의 무릎으로 올라 반들반들해진 성단을 셔터에 담았을 뿐입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
소설가

와중에 헬레나네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분이, 아픈 무릎을 꿇고 한 계단 한 계단 2층 예배당 입구를 향해 오르고 있었습니다. 빨판을 잃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하지만 작정한 듯 내딛는 아저씨의 무릎걸음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애잔하고 진지한 그 구도의 시간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그 무엇이었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연민이나 구차함의 감정이 제 안에 아주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타자의 고난을 공감하고 내 하루를 반성해야 하는, 실체적 행위를 거른 자의 자기합리화가 발동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명한 그림 같은 그 기도 속에 제 안위도 포함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헬레나네 아저씨의 기도 덕에 제 일탈의 벌이 그 정도에 그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복만 기원한 끝에 곁다리로 끼워주는 기도가 아니라, 온 인류가 우선인 소망을 기도한다는 아저씨의 진실함이 통하지 않을 리 없었겠지요. 그만하기 다행이다는 말은 그냥 생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하기 다행일 수 있도록 부지불식간에 누군가는 길을 잡아주고 배경이 되어 줍니다.

손목의 욱신거림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날 스칼라 산타의 시간만은 아슴아슴할 때까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진지한 믿음과 이타적 자애로 가득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삶 자체가 충만합니다. 그들은 계단을 오르기 전에도 이미 성실하고 친절했지만, 계단을 오르면서 그 마음들은 더욱더 이타적으로 승화합니다. 누군가의 따스한 수고나 진심어린 선의 덕에 우리의 삶이 다사로워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제 것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것 또한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뜨끔해지곤 합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 앞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들, 꼭 그리해야지 해놓고 현실에 닿으면 미적대고 망설인 날들이 하 몇 날인지요. 반성문을 되새김질하기도 전에, 어리석게도 저는 또 다른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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