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동맹’의 사이에서
‘민족’과 ‘동맹’의 사이에서
  • 등록일 2020.06.29 18:59
  • 게재일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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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2018년 9월 20일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서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우리민족’과 ‘민족자주’를 역설하면서 감격에 젖었다. 남북정상의 집무실 간에는 핫라인(hot line)이 연결되고, 개성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되었다. 북·미 정상회담도 세 차례나 있었으니 평화와 협력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하였다. 권정근 외무성국장은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문대통령의 6·15연설에 대해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하면서 대북특사파견 요청을 “불손한 제안”이라고 즉각 거절했다. 심지어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서서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떨더니 한 일이 없다”고 조롱한다. 돌연 김정은이 대남군사행동을 유보하면서 우리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역할을 분담해서 ‘때리고 달래는’ 전형적인 ‘한국 길들이기’ 전략이다.

동맹의 입장이 나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은 역효과를 낳는 추가 행위를 삼가라”고 경고하면서 “동맹인 한국과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특사가 미국을 방문해 공동대응을 협의했다. 하지만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신중하다. 북한의 군사도발이 미국을 겨냥할 경우 재선 가도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를 역설하는 트럼프는 북한이 직접적으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한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최선이라는 정치적 계산이다. 게다가 최근에 발간된 볼턴(J. Bolton)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한국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민족도 동맹도 ‘대한민국이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 ‘존재의 가치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 ‘민족통일은 미래의 담론’이지만 ‘남북대치는 현재의 위기’이다. 현재를 지켜내지 못한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핵무기는 남북 간 비대칭전력의 핵심인데,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것은 동맹인 미국의 핵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유약한 이상주의’로서는 핵무장한 ‘강력한 현실주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북핵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 즉 동맹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맹으로 현재를 지켜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족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만약 민족과 동맹이 충돌한다면 생존을 위해서 동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6·25전쟁의 교훈이며 비핵국가의 운명이다. ‘한반도 운전자’를 주장하는 문대통령의 운전이 서툴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대통령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운전해야 한다. 부디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하고 ‘장밋빛 환상’에서 조속히 깨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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