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영 서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했네

사슴의 눈 깊은 눈

16㎜ 영화 속에서 그를 만났네

후끈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맨발로 걷는 그는

두 손을 뒤로 깍지 끼었네 속옷만 간신히 걸친 채

저항도 없이 엎드려서

먼산바라기 하고 있었네

이명의 군홧발들 총부리들 대검들 

뎅겅뎅겅 목 부러진 꽃들

그 비명으로 넘쳐흐르던 광주천이여!

굴비 두름처럼 끌려간 친구 대신, 아비 대신

금방이라도 후려칠 듯한 곤봉의 사내 대신

어느 절정의 노래가

빙의(憑依)의 몸으로 돌아왔구나
시인은 80년 5월 광주를 담은 16㎜ 다큐멘터리 기록 영화를 보고 그 속에 나오는 사슴 사내가 계엄군의 곤봉과 대검에 짓이겨진 채 금남로 아스팔트 위로 끌려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봄, 수많은 사슴 사내들이 질질 끌려가고 군홧발에 총칼에 상했다. 아물 수 없는 상흔을 간직한 채 죽어간 사슴들은 말이 없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리며 외치던 그들의 피 끓는 함성과, 뜨거운 눈빛만 영원히 저 푸른 바람 속에 들려오는 비극의 오월이 또 오고 있음을 시인은 다시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