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달팽이
  • 등록일 2020.06.24 20:10
  • 게재일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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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 숙

소나기 후두둑 지나간 텃밭

푸릇한 배춧잎에 들어붙어

달팽이 한 마리 기어가고 있다



제 몸보다 더 큰 집을

보기에도 버거운 삶처럼

꾸역꾸역 짊어지고 간다



사람에게도 그런 껍질이 있다

내 아버지,

체구보다 더 큰 나뭇짐을 지고

아침마다 산을 내려오셨다

올망졸망 자식들,

평생을 달팽이 껍질처럼 지고 산

아버지의 집이었을까



단 한 순간이라도

소나무 푸른 그늘에서

그 짐 내려놓고 쉬어본 적 있었을까



배춧잎 위의 달팽이 한 마리

어느새 저만큼 기어간다

소나기 후두둑 지나간 텃밭에서 동그라니 집 한 채 지고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면서 시인은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다. 올망졸망한 자식새끼들 소복이 들어찬 집을 지고 아버지는 꾸역꾸역 버겁고 힘겨운 생을 살아오신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아버지의 등에 얹힌 집이었다가, 세월 지난 후 이제는 우리도 등에 무거운 집을 지고 가는 처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네 한 생이 이러한 운명적인 굴레 속에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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