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바사리 자화상.

오랫동안 미술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미술작품과 미술가들의 이야기만 전해왔을 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나, 개별 미술가와 작품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는 고대로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역사인식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르네상스가 무르익었던 16세기 이탈리아, 그것도 르네상스의 본고장 피렌체에서였다.

메디치 가문의 연출가로 활동했던 미술가 조르조 바사리는 1550년 ‘치마부에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는 가장 탁월한 이탈리아의 건축가, 화가, 조각가 생애’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줄여서 ‘미술가 열전’으로 불리는 책이다. 토스카나어로 쓰인 이 책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위대한 미술가들의 생애가 집대성되어 있다. 13세기에 활동한 치마부에(Cimabue)로부터 그의 제자였던 조토 디 본도네, 마사초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거쳐 미켈란젤로에 이르기까지, 토스카나를 중심으로 활동한 주요 미술가들의 방대한 정보가 담긴 놀라운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훗날 미술사 연구자들은 바사리에게 ‘미술사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선사했다. 19세기 역사학자로 미술사의 학문적 체계를 완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바사리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칭송하기도 했다. “바사리의 빛나는 저작이 없었더라면 유럽의 미술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사리에 대한 부르크하르트의 평가는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의 저서를 통해 비소로 단편적인 기록에서 벗어나 미술이 역사의 얼개를 통해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흐름을 형성해 왔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고딕이나 매너리즘 혹은 르네상스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리나시타 등과 같은 미술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도 바사리였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가 열전’ 서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역사관에 따른 미술 전개과정의 서술이다. 바사리는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를 꽃피운 15세기 콰트로첸토(Quattrocento)에 이르는 미술의 발달과정을 특정한 역사해석의 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의 선조 고대로마인들의 찬란했던 미술을 ‘정점’으로 보았고, 야만적인 양식이 지배한 중세를 ‘몰락’ 그리고 고대를 모방해 찬란한 재건을 꿈꾼 15세기 콰트로첸토를 ‘리나시타’(Rinascita), 소생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르네상스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완전했던 고대의 미술이 중세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했고, 15세기에 다시금 부활한 것으로 보고 있는 바사리의 이러한 사관(史觀)에는 다분히 구원에 대한 기독교의 교리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바사리는 르네상스를 시기에 따라 세 단계로 세분화했다. 첫 번째 시기인 14세기 트레첸토(Trecento)를 발전 초기단계인 유아기, 두 번째 시기인 콰트로첸토를 청년기 그리고 세 번째 시기인 16세기 친퀘첸토(Cinquecento)를 성숙기로 규정했고, 그 최고의 정점에 조각가 미켈란젤로를 올려놓았다. 이렇게 짜인 틀 안에 각 시기에 속한 주요 미술가들을 위치시키고 그 생애를 서술해 나갔다. 바사리의 목적은 개별 미술가들의 방대한 정보를 수록한 백과사전이 아니었다. 자신의 시대를 고대의 부활로 규정하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가들을 저서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태평성대가 아니라 대혼란의 시대였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1517)으로 유럽은 구교와 신교로 나뉘었고, 이탈리아 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그리고 교황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게다가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용병들이 로마를 급습해 영원한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불안과 공포, 패배의식이 지배하던 절망의 시대에 바사리는 콰트로첸토 천재 미술가들의 찬란한 업적을 찬양하여 미술의 부활과 함께 시대 부활의 염원을 담았던 것이다.

바사리 개인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관계성 속에서 ‘미술가 열전’의 집필 동기와 목적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미술사의 역사에서 그의 저서가 가지는 더욱 중요한 의미는 미술가 개인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에서 벗어나 미술의 흐름을 역사적 틀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는데 있다.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