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 존재의 흔적들 뿐
사라지지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 존재의 흔적들 뿐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4.30 18:45
  • 게재일 2020.0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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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꿈과 기형도 시인
터키 동부에 자리한 마을 도우베야짓에서 만난 이삭파샤 궁전.
터키 동부에 자리한 마을 도우베야짓에서 만난 이삭파샤 궁전.

오래된 서적(書籍)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죽음이란 삶의 대극이 아닌 일부”라고 잘라 말했다. 토를 달 것도 없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과 죽음은 자석의 N극과 S극, 혹은 물과 기름이 아니라 같은 밀도의 액체를 섞어놓은 혼합주스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살아서 숨 쉬고 움직이는 인간 중 99%는 애써 부정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연한 사실이 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

민족과 인종, 종교와 경제 문제로 야기된 전쟁은 그 전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지 않은 인간을 먼저 죽음으로 내몬다. 세계 1·2차대전이 그랬고, 한국전쟁이 그랬으며, 아프리카와 동유럽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내전이 그랬다. 아돌프 히틀러라는 한 광기 어린 인종주의자의 일그러진 욕망은 유대인 수백 만 명의 죽음과 수난으로 현대사에 기록됐다.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선 70년 전 한국인들은 어제까지 형, 동생으로 부르던 서로의 가슴에 총을 쏘아댔다.

이슬람과 가톨릭, 기독교와 정교회로 각기 다른 신을 섬기던 이들 역시 “망할 이교도”라고 상대방을 힐난하며 이웃의 팔다리를 잘랐다. 함께 저녁을 먹던 식탁으로 핏물이 튀었다.

최근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고 간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세상 어디에도 끔찍하고 해괴한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쟁에서 사용되는 총탄에 눈이 달리지 않았듯, 바이러스 또한 사람을 가려 습격하지 않는다.

죄 짓지 않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도, 패륜을 거듭하던 천하의 악당도, 어린아이도, 팔순의 노인도 갑작스레 닥쳐오는 전쟁과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를 피해갈 수 없다.

 

하얀색 벽과 붉은빛 지붕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인도의 성.
하얀색 벽과 붉은빛 지붕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인도의 성.

 

▲자신은 사라지지 않을 줄 알던 이들이 남긴 흔적

인간은 선한 동시에 악하고, 현명한 동시에 우매하다. 역사란 그걸 증명해온 과정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우매한 자들은 앞서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본질 해석’을 믿지 않거나 백안시했다. 자기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성당과 사찰, 교회가 사후의 행복을 빌기 위한 기원의 공간이라면 거대한 궁전은 살아서의 영화를 끝까지 누리겠다는 욕망의 물질적 현현(顯現)이다. 마침내는 삶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여러 차례 여행하며 적지 않은 숫자의 궁전을 보았다. 짧게는 수백 년 전에 축조된 것부터, 멀리는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까지.

인도의 북부. 널찍한 호수 근처에 깎아지른 듯 직각에 가깝게 서있는 커다란 석벽. 그 뒤 웅장한 산이 품고 있는 성(城)의 모습은 현실 바깥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하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성채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환하게 눈부셨다.

터키 동쪽 끝 조그만 마을 도우베야짓에서 만난 이삭파샤 궁전은 신비하기까지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다는 풍문이 떠도는 산 속에 들어선 미려한 고궁(古宮).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은 세월의 풍화를 이겨낸 오래된 흙벽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를 둘러볼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자그마치 2천500년 전 옛날. 당시 지구의 1/4을 지배했던 페르시아 왕조의 위세를 짐작하게 해주는 광활한 유적지인 페르세폴리스. 황량한 사막 위에 세워진 정교한 조각과 엄청난 규모의 열주(列柱)가 한계를 몰랐던 왕들의 권력을 우회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한 걸음만 물러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자. 그 궁전과 건축물은 영주(領主)나 왕 혼자서 만든 게 아니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 아름답고 휘황한 궁궐과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땀과 피를 흘린 건 피지배 계층이었을 터.

최소한 자신만은 영원한 행복, 영원한 권력, 영원한 삶을 지속할 것이라 착각했던 한 사람을 위해 만 사람이 원치 않는 희생을 치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고성이 아닐까?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는 엄연한 명제에 눈 돌린 지배자들.

오래 전 축조된 거대한 성과 건축물은 비이성의 영역에서 영원을 지향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성의 영역에서 꿈꾸는 영원이란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을 수 있는 시가 서른도 되기 전 안타깝게 요절한 기형도(1960~1989)의 ‘오래된 서적’이다.

 

수천 년 전 왕의 권력을 짐작케 하는 이란의 고대 유적 페르세폴리스.
수천 년 전 왕의 권력을 짐작케 하는 이란의 고대 유적 페르세폴리스.

▲왕이 원했던 ‘영원’과 시인이 꿈꾼 ‘영원’

일본 소설가가 죽음과 삶의 상관관계를 정의했다면, 한국의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유한한 삶 속에서 영원에 접근하는 방법을 시(詩)라는 수단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하루키보다 기형도가 한 수 위다.

예민했던 청년시인 기형도는 책을 통해 영원을 꿈꾼다. 독서가 있었기에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텅 빈 희망 속에서’ 책은 영원에 이르는 길을 인간에게 알려준다.

책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길을 본 시인은 이런 깨달음도 얻게 된다.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라는.

고대의 왕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영원에 다가서고자 했다. 웅장한 궁궐을 짓고, 눈부신 보석으로 장식된 조각을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영원히는 고사하고 100년도 살지 못했다.

반면 시인은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꿈꾸어야 한다/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는 노래로 영원을 추구하는 또 다른 길을 일러 주고 있다.

한 명 예외 없이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둘 중 어떤 방법으로 영원을 지향해야 할까. 왕의 방식? 아니면 시인의 방식?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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