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적 전쟁’을 조명한 작가 하근찬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폭력의 세기’에서 “20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세기가 되었으며, 그러므로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모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폭력의 세기가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렌트의 말은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하여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6.25, 베트남 전쟁 등을 20세기 내내 겪은 한국인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수난이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제목처럼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이다.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시대에 징용에 끌려가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화약으로 동굴을 파다가 팔 하나를 잃었다. 그런 그가 아침부터 신이 났다. 이유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삼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고등어까지 사서 손에 든, 만도의 눈 앞에 진수는 다리 하나를 잃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지막 장면은집으로 돌아오던 두 부자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팔 하나가 없는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다리 하나가 없는 아들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산 고등어를 손에 든 채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우리가 겪은 전쟁을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문학적 사명이라고 여긴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하근찬이다. 1931년에 태어난 하근찬은 “전쟁의 그늘 속에서 태어나 전쟁과 함께 자랐고, 또 꿈 많던 시절을 전쟁 때문에 괴로움으로 지샌 것만 같이 회상”된다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전쟁피해담”(‘전쟁의 아픔, 기타’, 산울림, 겨레, 1987, 4면)이라고 말하였다.

하근찬이 전쟁에 대한 고발을 자신의 문학적 사명으로 여긴 이유는, 본인이 누구보다 큰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그는 한국 전쟁 중 아버지가 아무런 죄도 없이 반동으로 몰려 총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경험하였으며, 본인도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국민방위군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겪은 하근찬은 6.25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그것은 사람이 만든 지옥이었다. 열아홉 살이던 나는 그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전쟁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끝없는 절망을 느꼈었다.”(‘인간에 대한 끝없는 절망’, 내 안에 내가 있다, 엔터, 1997, 33면)고 6.25를 회고할 정도이다. 하근찬은 일제 말의 폭력도 나름대로 체험하였는데, 전주사범학교 1학년 때이던 1945년 4월부터 8월 15일까지 경험한 4개월여의 기숙사 생활을, “이른바 일본군국주의 교육의 맛”(‘과거와 현재의 오버랩’, 文藝, 1988년 여름호, 313면)을 실컷 보았던 때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피해담이라고 규정한 하근찬의 소설은 경북 영천을 주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근찬은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열 살 무렵 교사였던 아버지의 전근으로 고향을 떠난다. 이후에는 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전북 지역에서 살다가, 1948년에 영천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귀향한다. 이후 1956년에는 영천초등학교 동료교사와 결혼하여 영천에 신혼집을 마련하였으며,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는 소식도 영천에서 듣게 된다.

고향을 떠나 있을 때에도 하근찬은 고향 영천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진정한 고향은 마음 속에’라는 산문에서 6.25가 일어나기 한 두 해 전에 혼자서 고향에 갔을 때의 감상과 다짐을 밝히고 있는데, 그때 가슴 속에 고향에 대한 목마른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나중에 작가가 되면 “반드시 경상도 사투리를 쓰리라고 다짐했다.”(‘내 안에 내가 있다’, 엔터, 1997, 16-17면)는 것이다. 실제로 하근찬이 창작한 대부분의 작품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근찬의 소설세계는 대부분 가난한 농촌을 배경으로 일제 말기나 한국전쟁과 같은 민족사의 비극과 이로부터 비롯된 여러 사회문제를 형상화한 것들이다. ‘수난이대’는 작가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으로 하근찬 문학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수난이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제목처럼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이다.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시대에 징용에 끌려가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화약으로 동굴을 파다가 팔 하나를 잃었다. 그런 그가 아침부터 신이 났다. 이유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삼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고등어까지 사서 손에 든, 만도의 눈 앞에 진수는 다리 하나를 잃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만도는 너무나 큰 실망에 진수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르겠다는 아들을 향해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능 기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은 집으로 돌아오던 두 부자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팔 하나가 없는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다리 하나가 없는 아들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산 고등어를 손에 든 채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이 부자(父子)는 눈물 나는 협동을 통해 전쟁과 거짓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삶이 있는 본래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개천이 흐르고 주막이 있는 ‘수난이대’의 농촌 마을은 영천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김동혁이 작가의 전기 자료, 작품의 줄거리, 현지답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 놓았다. 이 작품에 나타난 주인공 만도의 동선은 ‘용머릿재-외나무다리-주막집-시장-정거장-주막-외나무다리’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용머릿재는 마현산 일대, 외나무다리가 놓인 시냇가는 남천, 주막집은 남천의 둔치 인근, 시장은 영천의 재래시장, 정거장은 영천역에 해당하는 것이다.(김동혁, ‘문학적 공간’의 분석을 통한 ‘지리적 공간’의 재구성, 어문론집 46집, 2011, 239-266면)

하근찬은 자신의 몸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고향 영천을,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전형적 공간으로 형상화하였다. 보편적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이유는, ‘수난이대’가 미학적으로도 매우 잘 짜여진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난이대’는 텍스트의 모든 효소들이 함께 작동하면서 작품의 의미를 확립시켜주는 유기적 통일성(organic unity)을 갖춘 작품이다. 잘 짜여진 레고 블록처럼 하나의 사건이나 장소 혹은 소도구 하나도 허투루 쓰인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 만도는 진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주막을 떠올리고, 서술자는 굳이 “만도는 여간 언짢은 일이 있어도 이 여편네의 궁둥이 곁에 가서 앉으면 속이 절로 쑥 내려가는 것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 주막은 나중에 만도와 진수를 정서적으로 결합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처음 다리 하나를 잃은 아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만도는, 주막에 들르고서야 아들을 향한 본연의 따뜻한 부정(父情)을 회복한다.

 

‘수난이대’ ‘흰 종이 수염’등 하근찬의 작품들은 다양한 출판   사에서 출간돼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수난이대’ ‘흰 종이 수염’등 하근찬의 작품들은 다양한 출판 사에서 출간돼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산 고등어도 이 작품의 감동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 고등어가 없었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에서 진수가 만도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진수가 고등어를 손에 들고 다리를 건넘으로써, 만도 역시도 진수에게 의지하는 모양새가 된다. 고등어는 단순한 밥반찬이 아니라, 전쟁으로 상처 받은 두 부자가 힘을 합쳐 본래의 삶을 되찾는다는 작품의 주제를 가능케 하는 주인공인 것이다. 이처럼 서사의 경제학이 철저하게 지켜진 결과, 이 작품은 단편의 분량으로 민족사의 아픔과 극복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살뜰하게 담아내고 있다.

‘수난이대’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소설이기도 하다. 슬픔을 자아내는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와 아들의 훼손된 육체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도 없는 이들 부자에게 훼손된 육체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웃음을 자아내는데, 그것은 대부분 인물들의 언행에서 비롯된다. 만도는 기본적으로 단순하고 다분히 익살기가 넘치는 인물이다. 만도가 주막에서 주모와 말을 주고받는 것이라든가, 냇가에서 오줌을 누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향토색 짙고 정감 넘치는 경북 방언 역시 순박한 두 부자의 맑은 심성을 부각시키며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주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능 기다.”라는 낙관이야말로 그 어떤 외나무다리도 건널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흔히 ‘수난이대’(1957), ‘나룻배 이야기’(1959), ‘흰 종이 수염’(1959)을 하근찬의 초기 3부작으로 꼽는다. 이들 작품은 모두 농촌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끔찍한 장애를 입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고향과 타향이 선명한 이분법을 이룬다. 고향이 따뜻한 사람들의 인정이 가득한 자연의 세계라면, 타향은 전쟁의 포성이 가득한 거짓 문명의 세계이다. 이 시기 하근찬은 문명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폭력과 거짓으로 가득 찬 부정적인 대상으로 보았다. ‘수난이대’에서 정거장에 있는 시계는 고장난 채 유리가 깨어져 있으며 먼지가 꺼멓게 앉아 있다. 또한 ‘나룻배 이야기’에서 양복을 입거나 어깨에 총을 멘 사람들은 멀쩡한 고향 사람들을 데려다가 못 쓰게 만드는 고약한 사람들이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지만, 결코 그 대단한 전쟁이나 문명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극복해내고자 한다. 그러한 힘은 바로 자연에 가까운 그들의 순수함과 생명력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극복에의 의지가 ‘수난이대’에서는 외나무다리 건너기로, ‘나룻배 이야기’에서는 잘난 외지인들을 배에 태우지 않는 것으로, ‘흰 종이 수염’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추상적인 공간에서 전쟁에서 비롯된 존재론적 고통을 이야기하던 전후(戰後)에, 하근찬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인물과 공간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매우 의미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그러한 창작의 한복판에는 경북 영천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한번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소설가 하근찬은…

1931년 경북 영천 출생. 전주사범과 동아대에서 수학했다. 이후 교사와 잡지사 기자 등으로 일했다. 창작집 ‘수난이대’ ‘일본도’ ‘서울 개구리’ ‘내 마음의 풍금’ 등을 냈고, 장편 ‘야호’ ‘제복의 상처’ ‘여제자’ ‘은장도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인정과 향토성이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이 겪는 민족적 수난을 묘사한 작가로 잘 알려졌다.

/문학평론가 이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