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안 그래도 ‘깜깜이’
정책·인물·메시지 실종 상황
양당 등 ‘지역주의’ 자극 몰두
유권자, 집단지성으로 무장
케케묵은 구태 타파 나서야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암울한 지역주의의 그림자가 전국 선거판에 드리우고 있다.

거대 양당의 극한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는 첨예한 선거전에서 우리가 그토록 절실히 가꿔온 ‘지역주의 타파’의 씨앗들이 한순간에 절멸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영남에서도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보수정당 당선자가 나와야 한다.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치는 민주주의의 낯부끄러운 퇴보를, 이 참상을 막아낼 묘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번 총선은 모든 이슈가 코로나에 빨려 들어간 ‘코로나 선거’다. 정책도, 인물도, 메시지도 안 보인다. 지역에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거는 철저하게 중앙정당 중심으로 흐르고, 완벽한 공중전이 전개되고 있다. 정치꾼들은 기어이 ‘지역주의’의 판도라를 건드리기 시작했고, 유권자들은 이에 속절없이 휘둘리는 추세다.

영남지역에서부터 여야 거대 정당의 사생결단 분위기에 휩쓸려 지역주의의 망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이성 마비의 한 현상일 수도 있다. 대구·경북(TK)에서는 4년 전 어렵사리 민주당 깃발을 세웠던 김부겸, 홍의락 의원마저 열세로 분류되고 있다. 부산·경남(PK)에서도 민주당은 현재의 10석을 유지하기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로서 영남은 미래통합당이나 통합당 출신 무소속이 대부분 승리를 차지할 전망이 우세하다.

호남지역 선거 판세는 더욱 고약하다. 지난 20대 총선과는 달리 집권 더불어민주당 싹쓸이 분위기로 나타나자, 호남정당인 민생당이 자기 당 후보도 아닌 ‘이낙연 대권론’을 들고나와 마케팅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정책 콘텐츠를 내팽개치고 ‘지역 맹주’를 내세우는 일은 고질적 지역주의 정치의 표본이다. 4년 전엔 이정현, 정운천 등 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후보들이 호남에서 의석을 확보했지만, 지금은 어림 턱도 없다는 전언이다.

극심한 진영대결과 지역주의는 나라의 미래비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피폐한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과 무관하고, 생산적인 담론을 이끌어가는 일도 전혀 하지 못한다. 그저 권력을 차지하고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는 후진 정치를 답습한다. 유능한 정치신인을 양성하거나 발굴하기는커녕 명망가를 중심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충성과 아첨만이 횡행한다. 그만큼 겪고 아팠으면 되지 않았나. 다시는 그런 시대로 되돌아가서는 안 될 일 아닌가.

코로나19라는 희대의 대재앙을 맞아서 인류의 삶은, 그리고 우리 국민의 미래는 이제 더욱 불투명해졌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는 예언은 상식이 됐다. 케케묵은 정치구조,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기는커녕 무한 증오하는 이 구상유취한 확증편향의 정치 수준을 갖고는 도무지 대응할 수 없으리라는 점도 자명하다. 깜깜이 선거 속에서 이제 남은 것은 유권자들의 각성뿐이다. 우리의 아이들, 자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하고 투표장에 가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번뜩이는 ‘집단지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안재휘 논설위원 ajh-777@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