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악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는 악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 등록일 2020.03.25 19:46
  • 게재일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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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세상이 바뀌었다. 좋게만 바뀌면 얼마나 좋았을까. 온라인과 디지털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소통과 연결의 도구로 생겨난 사이버 세상에는 선만큼이나 악이 판을 치고 있었다. 여성이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됐다. 도착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돈이 함께 똬리를 틀었다. 여성은 노리개가 되고 노예가 됐다. 이번에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검사가 짙은 의심을 받았는가 하면 언론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화와 체육, 교육과 재계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성적 일탈은 심각함을 넘는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다지도 성에 관하여 바른 이해의 결핍과 뒤틀린 호기심의 과다를 겪는 것일까.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탈이 나야만 잠시 나눈다. 평소에 성에 관하여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왠지 드러내기 거북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 해도 이만큼 불거진 현상 앞에 우리는 이제 침묵할 수가 없다. 폭행과 범죄로 드러날 당시에만 잠시 문제인 듯 다뤄져도, 성적 일탈이 문제라면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가. 딸들과 누이들이 저렇게 피해를 입고 경제적 손실마저 발생할 양이면, 드러나기 전에 이를 막아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드러난 문제 앞에 규제와 처벌은 또 충분했는지. 해외의 유사한 성적 범죄와 비교하면, 우리 사법체계는 턱없이 가벼운 처벌형량을 가졌다고 한다. 범죄로 드러나기 전에도 별 인식이 없다가 범죄로 규정되어도 처벌마저 미미하다면, 우리 사회는 성적 도착을 오히려 키우는 게 아닌가.

학교는 성을 가르치는가. 만남과 관계형성에 관해서, 우정과 사귐에 대해서, 사랑과 성에 대해서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 성적과 등수로 줄은 잘 세우면서 바른 인간으로 키우는 일에는 비교적 소홀하지 않았는가. 주범으로 잡힌 이가 대학에서 학보사 편집국장까지 했다는 청년이라니!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존재적 상이함이 문제로 보여 동성애가 그토록 걸림돌이더니만, 뒤틀린 이성애가 빗어내는 폭력과 범죄는 더 큰 사회악으로 다가오지 않았는가. 교육과 문화의 현장에서 성을 부끄러운 소재로 숨길 일이 아니라 당당하게 표현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성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인식과 시선을 바로잡아야 하며, 무섭도록 왜곡된 성적 이해를 수정해야 한다.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 범인으로 지목된 그가 이렇게 말했다면, 잘못인 줄을 이미 알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게 아닌가. 뒤에는 26만이나 되는 사용자가 있다고 한다. 충격에 싸여 머물기보다 얼른 고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딸들과 누이들이 더는 말 못할 상처와 고민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깨우쳐야 한다. 잘못 길들여진 성적 호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분명히 보아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나라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사람 사이 관계가 사람다운 곳에야 나라다운 나라도 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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