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일대 쾌거를 활용하려는 소위 ‘기생충 마케팅’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견강부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화예술 중흥을 위한 본질적 여건 개선책 추진은 외면한 채 국가자원 또는 지방자치단체 자원을 편향되게 사용해 낭비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기생충’에 기생하려는 얄팍한 정략이 아닌 근원적 문화예술 기반 개선 방안부터 모색돼야 할 것이다.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닌 봉 감독의 이력을 활용하려는 야당 후보들의 ‘봉준호 마케팅’이 뜨겁다. ‘봉준호 명예전당 건립’, ‘봉준호 거리 조성’, ‘봉준호 감독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 설치’, ‘봉준호 영화박물관 건립’ 등 관련 공약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집권 시기에 봉 감독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었던 정당 후보들의 몰염치라는 비난이 넘쳐난다.

서울 은평구 재선에 도전하는 한 여당 후보는 기생충 포스터 등장인물을 패러디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에 나서겠다”고 했고, 경기 안양 동안갑에 도전하는 출마자 역시 영화 포스터를 편집해 사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광역시는 봉 감독의 2009년 작품인 ‘마더’ 촬영지인 부산 남구 문현동 일대의 관광 상품화를 추진한다. 충청남도는 영화 ‘기생충’ 제작자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의 충남영상위원회 활동 이력을 새삼 부각하기 시작했다.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영화가 4관왕을 차지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세기적 사건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지난해 4월 발의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외면한 채 ‘기생충 마케팅’에만 나서는 것은 염치없는 행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전국적으로 중복투자, 과잉투자가 빚어질 개연성마저 대단히 높다. 아카데미상 수상의 명성과 국민적 관심만을 노려 얄팍한 정략부터 앞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좋은 일을 정말 나라의 자랑으로 만들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인에 관한 범국가적 지원체계부터 먼저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