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구 찬

봉분 하나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무덤의 주인은

티끌 한 점의 기억마저 데리고

주섬주섬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새 한 마리 날아올라

톡, 톡

서쪽 하늘을 열고 몸을 던진다

이쯤에서

나의 목숨도 가볍게

봄비에 젖고

아직 맥박이 뛰고 있는

무덤가에 누워

나는 죽어서

징글한 뱀의 허물을 남길까

내가 떠난 자리

부엉이 울까

비에 젖는 새로 조성된 봉분을 바라보며 시인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떠난 지 얼마 안 된 봉분 속에는 망자의 혼이 머물러 있을 것이고 서쪽으로 가는 문을 열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고 있다. 언젠가 다가올 자신의 사후를 예견하며 욕심 없이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부엉이가 울어주기를 기대하는 겸허한 마음 한 자락을 펴보이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