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지라도 ‘겨울 제주도’가 그립다
슬플지라도 ‘겨울 제주도’가 그립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1.30 20:10
  • 게재일 2020.0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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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성산포와 이생진 시인

제주 성산포 인근의 아름다운 바다 풍광.

혼자서, 또는 졸업을 앞둔 학생 때 단체여행으로, 혹은 지난 시절 연인과 함께 제주도를 가곤 했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제주 여행’이 10여 차례가 넘는다.

어느 곳을 가도 지척에 짙푸른 바다의 낭만이 있고, 싱싱한 해산물과 흑돼지 고기가 맛있는 섬.

봄과 여름에 즐기는 제주도 여행은 물론 좋다. 그러나 ‘겨울 제주’의 매력도 만만찮다. 성산포나 우도에서 차갑게 출렁이는 푸른 물결을 보며 제주의 근현대사를 떠올려보는 건 쓸쓸하고 아프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일일 터.

몇 해 전이다. 제주에서 몇 년을 살다가 서울로 돌아간 소설가 A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제주도는 국수도 맛있어요. 멸치로 우려낸 국물 맛이 그만이죠. 작업실 아래에 있는 국수 가게를 1년 넘게 드나들었지요.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주인장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내 말을 듣고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대꾸가 없더라고요. 서운했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4.3항쟁에서 입은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아직도 이방인에 대해 저처럼 배타적일까라는 생각에 슬퍼졌어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 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지척에 바다를 둔 제주도의 작은 마을.
지척에 바다를 둔 제주도의 작은 마을.

▲제주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와 소설들

1948년 4월 유채꽃 만발하던 때 시작된 제주 사람들의 통곡은 21세기가 돼서야 겨우 위로받을 수 있었다. 국가 차원의 사과와 관련 특별법 제정이 추진된 것.

갑작스레 닥쳐온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려 꽁꽁 얼어붙은 한라산으로 숨어 들어간 이들, 줄줄이 묶인 채 폭포 아래로 던져진 이들, 몽둥이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이들. 당시 제주도민의 15%가 죽었다. 지금도 제주도 작은 마을엔 제삿날이 같은 집이 많다. 이성이 상실된 광기의 시대였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살해된 이들 중 ‘폭도’로 불릴만한 인물은 이덕구와 김운민, 박남해와 김병남 등 무장 게릴라 400~5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3만여 명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억장 무너지는 억울한 죽음이었다.

오래전 ‘문학인 평화기원제’ 취재를 위해 제주도를 찾았던 날. 여든에 가까운 할머니 한 명을 만났다.

4.3항쟁 때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는 그녀는 행사에 참석한 작가들의 손을 잡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엄마와 오빠까지 다 죽고 저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발 다시는 이처럼 억울한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라며 울먹였다. 사실 문학은 4.3항쟁의 진실이 알려지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시인 이산하의 ‘한라산’ 등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이 역사적 사실로 직격하고 있다면, 원로 시인 이생진(91)은 우회적이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제주의 서러움과 우울을 노래하고 있다.

2년 전 ‘나 홀로 제주여행’을 떠났다. 20대 시절 여자 친구와 추억을 쌓았던 성산포에서 우도를 바라보며 기자는 이생진의 애끓는 시를 기억해냈다.

 

제주 성산포의 저물녘 풍경
제주 성산포의 저물녘 풍경

▲풍광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섬으로 남기를

타지에서 온 손님을 마냥 살갑게만 대하지 못하는 국숫집 주인, 부모와 형제를 잃고 캄캄한 고통의 터널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 검은 바위 위에서 잡아온 해삼과 멍게를 파는 거친 손등의 해녀들, 아무 것도 모르고 노란 병아리처럼 종종거리며 웃는 제주도의 아이들….

수난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성산포의 바다가 빛나는 보석이 아닌 지울 수 없는 ‘푸른 멍’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고통의 공유 방식일 뿐.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생진 역시 ‘빈 자리’라는 시어를 통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공허함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고난의 메타포인 ‘파도’와 타의에 의한 고립을 지칭하는 ‘고독’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것 또한 제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생진의 시는 끝없는 절망의 되풀이는 아니다. 행간 곳곳에서 읽히는 위로와 위안의 목소리 때문이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살아서 그리웠던 사람/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후략)’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마지막 대목은 죽음이 아닌 부활의 노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보리밭에도, 섬 꼭대기에도, 심지어 짚신 한 짝에서도 제주의 바람 냄새가 느껴지는 시.

다시 ‘겨울 제주’를 가게 된다면 이번엔 성산포의 풍광이 아닌 성산포 사람, 아니 제주도 사람들의 향기에 취해봐야겠다. 그렇다. 모든 인간은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다.

/사진제공 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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