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필요하지만 중앙정치 영향력 발휘 다선도 꼭 필요”
옥석 구분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물갈이론에 불만 표출

21대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물갈이의 대상으로 지목되며 동네북 신세가 된 자유한국당 소속 대구·경북(TK) 의원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 지난 총선 당시 TK지역에서 진박공천 논란이 일어나더니 이번 총선에서는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발(發)’ TK 50% 이상 물갈이를 넘어 지금은 70% 물갈이론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수도권 의원 등은 지역 의원들을 폄하하는 등 TK자존심도 크게 구겨진 상태다.

서울 언론에서 당무감사 결과 TK는 100% 갈아야 한다는 제목과 함께 당무감사 하위 명단이 돌고 있다. 실제 대구 5명, 경북 5명이 거론된 정체불명의 당무감사 하위 명단이다. 찌라시 형태로 돌기보다는 당 관계자발(發)을 인용해 구두형식으로 돌았고,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0명의 의원들을 직접 만나 불출마를 권유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TK지역 한 의원은 “황 대표를 만나면 안되겠다”고 농을 치기도 했다. 또 당무감사 하위 명단 얘기를 들은 한 TK지역 인사는 “민주당에서 당무감사 결과를 토대로 경선에 불이익을 받는 하위 20% 명단을 개별통보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당에서도 당무감사 결과를 토대로 불출마를 권유할 가능성이 있다”며 “황 대표가 현역의원 50%까지 거론한 이상 TK 10명 명단이 컷오프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와중에 TK의원들은 물갈이론에 대해 반박할 수 있으나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지난 20일 TK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인근 식당에서 만찬을 한 자리에서 정종섭(대구 동갑) 의원의 불출마에 대한 의견과 TK 50%이상 물갈이론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나 이후 의원들은 “물갈이론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자”고 결의했다. 한마디로 침묵하자는 의미다. 그 속에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이빨을 깨물고 참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이면에는 조용히 지역구를 다지며 자신의 역량을 키우면 컷오프를 피하고 당선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예년에 비해 더욱 필사적으로 지역을 누비고, 당원·유권자들을 만나 지역 다지기에 나섰다. TK지역 한 의원은 “TK물갈이론은 물론, TK지역 의원들에 대한 저평가는 선거때마다 있었던 일”이라며 “다시 살아남는 것이 지지자와 유권자들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다. 유권자와 지역민들만 보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국회 사무실에는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보좌진 대다수를 지역구로 배치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불가피하게 국회 일정이 있을 시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국회를 방문하는 정도다.

이런 상황이어선지 TK의원들뿐만 아니라 TK지역 보좌진들 역시 TK물갈이론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고있다. 마치 TK를 무능력 집단 내지는 역적 죄인 집단으로 매도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TK지역 한 초선의원은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지역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당을 위해 열심히 했는데 최근 분위기는 ‘무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TK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역민으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솎아내면 되는데, TK지역 전체를 물갈이 지역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갈이 광풍은 TK정치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초선만 있으면 21대 국회에서도 TK가 또 다시 찬밥신세로 전락해, 22대에서도 TK물갈이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래서 지역 정치권에서는 “역량있고 참신한 초선도 필요하지만 무게감이 있고, 중앙정치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선의원도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4년간 국회 생활을 해 온 의원들도 공감하고 있다. TK지역 한 초선의원은 “초선의원 시절에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기 힘들고, 재선으로 당선되면 국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며“3선 이상 중진이 되면 국정에 대한 영향력도 극대화할 수 있고, 지역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옥석을 구분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물갈이 무용론을 설파한 셈이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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