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과 공장축산
살처분과 공장축산
  • 등록일 2020.01.22 19:51
  • 게재일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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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세종은 젊어서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실록> 2년 8월 29일 기록이다. 하지만 세종은 상사(喪事)를 당하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넘도록 고기반찬 없는 소찬(素饌)으로 일관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수많은 고기로 넘쳐난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물론 바다에서 잡고 기른 허다한 어류가 밥상에 오른다. 5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이토록 먹을거리가 풍요를 구가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세상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고 불귀의 객이 되어야 하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다. 더욱이 각종 전염병 때문에 살처분된 숱한 생명을 돌이키면 가슴이 먹먹하다.

보도에 따르면, 2010년 구제역 발생 이후 2018년까지 여덟 차례 구제역으로 38만 마리의 소와 돼지, 일곱 차례 조류인플루엔자로 6천9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 47만 마리까지 더하면 지난 10년간 7천만 마리의 생명이 가축 전염병 예방이라는 목적으로 죽임을 당해 이 땅에 묻혔다.

어디 그뿐인가. 2010년 이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에 소요된 비용만 4조원에 이른다. 농가 피해보상 외에도 가축사체와 오염물을 소각-매립하고, 전염병 발생지역의 소독과 매립지 관리에 거금이 소요된 것이다. 여기에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사체 침출수 유출로 인한 토양과 수질오염이 추가된다.

요즘에는 살처분 가축을 묻을 매몰지를 구하는 일도 어렵다고 한다.

살처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도 우심하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가축매몰 참여자 트라우마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2011년 충남의 축협 직원이 살처분 작업으로 인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생명을 산 채로 땅에 묻어야 했던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이 눈에 밟힌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안(代案)을 찾아야 한다.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생매장하는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다. 가축 전염병 창궐은 멧돼지나 야생조류뿐 아니라, 공장식 밀집축산에도 있다. 가축 전염병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이유는 공장식 밀집축산에 있기 때문이다. 비좁은 축사 안에 대규모로 가축을 양산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리는 것도 좋겠지만, 인간과 가축이 공존하는 토양은 마련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도살되고 매몰되는 가축이 아니라, 기본적인 동물복지라도 준수하는 환경이 요구된다. 세종이 드신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평온한 환경에서 자란 가축이었을 터다. 우선 거기까지라도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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