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니는 설… 사색의 시간 가져보자
책과 노니는 설… 사색의 시간 가져보자
  • 등록일 2020.01.22 19:57
  • 게재일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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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볼 만한 책

이사하면서 방 하나를 서재로 바꿨다. 벽은 모두 붙박이 책장으로 둘러 책으로 채웠다. 책을 꽂았다. 그러고도 그동안 사들인 책들이 책꽂이를 넘쳐흘렀다. 이삿짐 싸며 버려야 할 것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욕심을 덜 내려놓았던 모양이다. 경자년(庚子年) 설 연휴에 누군가에게 소개할만한가 생각해보고 아니면 과감히 노끈으로 결박해서 추운 현관 밖으로 내쫓았다. 책꽂이에 살아남아서 당당히 자리를 지킨 책 몇 권을 여기 소개한다.

1 △책과 노니는 집 / 이영서

소설 ‘책과 노니는 집’에 주인공 장이는 서유당 주인인 홍 교리에게 “책꽂이에 책을 다 읽었나요?”라 묻는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인들과 같은 질문이었다. 어린애 다루듯 책을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다시 읽은 책도 있고, 읽다가 재미없고 어려워서 그냥 접어 둔 책도 있느니라. 내용보다는 꾸밈과 제목에 반해 사들인 책도 있고…. 어쨌건 다 읽지는 못했다.” 홍 교리의 생각이 나와 같은 마음이라 밑줄을 짙게 그었다.

“훌륭한 선비님들은 ‘논어’나 ‘맹자’가 재미납니까? 전 들여다보면 잠만 오고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그 책이 가장 많이 나갑니다.” 장이의 말에 홍 교리는 자신은 훌륭한 선비가 아니라 그런지 그런 책은 어렵고 재미없다 하면서 다만 곱씹고 새겨들을 말은 있다했다. 그리고 어렵더라도 반복해서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라며 웃었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단백한 맛’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 △담론 / 신영복

책의 부제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이다. 서문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신영복은 책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를 녹음해서 낸 강의록이 대부분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옥중에서 편지를 썼더니 그게 책이 되고, 또 여행기를 연재했더니 또 묶어서 출판되었다. 워낙 내용이 좋고 깊으니 너도나도 책으로 내고 싶었던 것이다.

담론, 이야기를 논하다. ‘논어’는 공자의 이야기를 제자들이 받아 적은 거라는데 신영복의 말을 받아서 적으면 글이 되니 일찍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김수영의 ‘풀’은 ‘논어’의 안연편 ‘초상지풍필언’에서 따와서 쓴 것이라 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예이츠의 시를, 엘리엇의 ‘사월은 잔인한 달’도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착상했다고 신영복 선생이 책에서 이야기했다. 아인슈타인도 갈릴레이와 뉴턴의 어깨위에 서있다고 하니 고전에 모두 빚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 고전, 고전 하는가 보다.

중국은 시 300편을 암송해야 초등학교 졸업을 한다고 한다. 어릴 적 외운 시나 노랫말은 나이가 들어도 기억나는데 우리나라 초등학생도 이런 시 수업을 받고 자랐으면 한다. 집이 초등학교 옆이라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다 보인다. 저 목소리로 시를 암송하면 진풍경일 테다. 신영복 선생님도 그리던 그림이 아닐까.


△그해 가을 / 권정생 원작, 김재홍 그림

그림책 표지를 어떻게 이런 시점으로 그렸을까. 바람에 날아 온 나뭇가지와 은행잎 사이로 소년이 웃는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이 연못에 비친 모습이다. 권정생 선생의 원작을 유은실 작가가 각색하고 화가 김재홍이 그림을 그렸다. 권정생이 젊은 시절 예배당 문간방에 살 때 그 곳을 들른 16살 소년 창섭이와의 사연을 그린 그림책이다.

가슴 시리게 하는 동화를 써서 우리에게 주고 가신 권정생 선생 옆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주인공 창섭이가 자신을 상대해주길 기다린다. 늘 배가 고팠던 선생과 창섭이는 하늘에서 감자가 내리는 상상을 한다. 영화 동막골처럼. 김재홍님의 하늘 그림은 예술이다. 구름을 이분만큼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그림책 속에는 숨은 그림이 있어서 가까이보지 말고 조금 거리를 두고 보는 게 좋다. 외국 속담에 그림과 전쟁은 거리를 두고 보는 게 좋다고 했다. 먼 산을 가만히 보다보면 산이 성경으로 변한다. 성경으로 난 산길에 창섭이가 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창섭이는 가난하고 어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 온 천사가 아니었을까.

이 소년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그림을 본 순간 ‘하….’하고 한참 가슴이 먹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 순간 바로 책을 주문했다. 그림책이 곧 갤러리다.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총·균·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1972년, 뉴기니 섬에서 흑인 정치가 얄리가 이 책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에게 유럽인들이(백인들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물은 것에 대한 답으로서 쓴 책. 결국 그 이유는 유럽인이 다른 대륙의 인간들이 가지지 못했던 총, 균, 쇠(칼, 창, 활, 갑옷 등) 이 3가지를 먼저 가짐으로서 신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요약되는데 그 원인을 더 깊이 파고들어 요약하면 유럽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700쪽이 넘는 책은 두께가 있어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하지만 갖고 있는 것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책이다.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한글의 우수함을 논하기도 해서 더 반가운 책이다. 김소월의 산유화가 네모반듯한 글씨로 인쇄되어 있어 세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한글에 대해 읽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뿌듯해진다. 부록으로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통해 일본 야요이 문화가 한국인에 의해 촉발되었음을 밝혀냈다. 얼마 전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 강연자로 나와 책에 못 다한 이야기도 들려주었으니 찾아보고 읽으면 두꺼운 책이 더 쉽게 읽혀질 것이다.

△사슴공원에서 / 고영민 시집

포항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영민의 세 번째 책이다. 시집은 한 권에서 두세 편의 시만 건져도 성공이라는데 그의 시는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알감자 엮이듯 달려 나올 만큼 회자되고 있으니 믿고 보는 시인이다. 다섯 권의 시집을 엮었지만 하필 세 번째 것을 선택한 이유는 발문 때문이다. 책을 세상에 내 놓아본 사람은 안다. 내 책에 발문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오래오래 고민한다는 것을.

‘사슴공원에서’ 발문은 그의 동료시인 윤성학이 써 주었다. 시만 읽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시인의 젊은 시절의 방황(발, 쾅 반도 유혈사태)과 무규칙 이종격투 시 창작 배틀 관전기 같은 그가 소설을 쓰다 시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밝혀 놓았다.

“눈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온다 / 빈 그네만이 걸려 있는 / 고향에서 온다.” 이 시를 메일로 윤성학에게 보내자 옛 선비들이 시 한 수 써서 보내면 시로 화답하듯, 매일 시를 써서 보내기를 7년가량 지속했다. 한 해 300여 편의 시를 썼다니 두 시인 모두 서로에게 큰 힘이 된 게 분명하다. 2002년 그렇게 등단을 했고 우리에게 좋은 시를 먹여주는 든든한 시인이 되었다.

그의 시 ‘저녁 밥상을 물린 뒤’를 읽으면 우리네 안방에 시인이 와 앉은 것 같고, ‘호미’를 읽으면서는 그의 몸에 매놓은 눈물 많은 소의 등을 쓰다듬고 싶어진다. 고영민의 시가 내게로 성큼 걸어 왔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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