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30도를 넘나들던 한여름의 더위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벌써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한여름 농부들의 고단한 땀방울로 수확한 곡식들을 조상과 신들에게 올리는 감사의 풍습은 동·서양의 공통된 문화이다. 중국은 중추절, 일본은 오봉절 그리고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과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등은 인류가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기념일이다.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농사에 의존해 생활했다. 이후 점차적으로 유럽 전역에 도시화가 확산되면서 열악한 농촌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가치가 살아 있었던 농촌생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프랑스의 빈촌인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죽는 날까지 그곳에 머물며 자기만의 농민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농민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진정한 수확의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화가였다.

그가 남긴 ‘이삭줍기’와 ‘만종’은 그의 대표작들로 평가받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로 그중 ‘이삭줍기’는 1857년 살롱에 출품되어져 당시 비평가들의 뜨거운 공방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그림 속에서 빈민계급에 의한 혁명 사상을 보고 비난했으며, 중산계급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진보적인 좌익계통의 비평가는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읽고 이것을 칭찬하며 환영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려는 일관된 작가관을 구사했었다. 그림속의 부부는 감자를 수확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들의 발 근처에는 쇠스랑과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그림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관람자는 그림의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그림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웅장함과 차분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밀레의 독특한 화법과 더불어 크게 부각되어 그려진 인물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농부 부부는 마치 그림의 전경으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져 외로운 느낌을 강하게 주지만, 화폭 전체를 차지하면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의 모든 소재는 농촌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림 속 여인들은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조금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떳떳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노동이든 노동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사람이 노동하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잃게 된다는 농민화가 밀레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밀레가 가졌던 삶의 철학처럼 우리 농부들의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