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계절의 변화는 칼날처럼 어김없다.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풍요로운 가을이 온다. 달콤한 여름방학을 보낸 아이들은 개학하고 2학기를 시작했다. 9월이 되면 학교와 도서관, 각종 단체에서 독서, 문화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포항시립도서관은 ‘2019 바다로 나온 도서관’을 준비 중이다. 포항문인협회는 덕수동 수도산에서 제20회 재생백일장을 연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미술관에도 행사가 풍성하다. 참 볼 것 많고 갈 데 많은 9월이다.

방학 중에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동료 선생님들은 학창 시절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1990년대의 학교 도서실은 열악했고, 형식적인 독서교육을 받았다. 학창시절에 만난 선생님들은 책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적과 입시, 대학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 시절을 거쳐 교사가 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아이들과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한다. 독서 강연을 갔다가 만난 어떤 젊은 교사는 “독서 교육 꼭 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스스로 읽게 놔두면 안 되나요?”라고 항변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한 담임 선생님과 1년 동안 함께 지낸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찾아 읽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에 만난 선생님에게서 무얼 배웠느냐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남는 것은 그때 그 선생님들의 태도다. 나를 어떻게 대했던가.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던가. 그 선생님은 무엇을 소중히 여겼던가.

2학기에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한 선생님이 말했다. “2학기에는 아이들과 동시집을 같이 읽으려고 해요. 요즘 아이들은 시를 잘 안 읽어요. 방학 때 동시집을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알던 시와 다르더라고요. 아이들의 삶이 잘 드러나서 아이들도 좋아할 거 같아요.”

정치든 예술이든 삶과 동떨어진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아이들의 삶이 분리된 지는 오래다. 시험이 끝나면 쓰레기장에 교과서와 문제집이 수북하게 쌓인다. 학기별로 학년별로 필요 없는 것들, 수명을 다한 것들이다. 거기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뭔가를 새로 배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시험만 치면 필요 없는 것들을 배우느라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낭비한다.

진정한 배움은 자신의 삶과 연결될 때 가치가 있다. 학창 시절에 행복한 독서 경험은 아이들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다. 첫 키스 같은 책 한 권은 평생을 간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삶과 연결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삶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을 바탕으로 흘러간다. 대통령이라고 아이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자고 일하는(배우는) 게 전부다.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 속에 우주의 영원한 진리가 있다. 우리가 애타게 찾아 헤매는 행복이 있다. 세발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옮겨가기 위해 매주 고군분투하는 딸과 자전거 관련 그림책을 읽으며 삶과 배움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보는 게 배움이다. 삶이 배움이고 배움이 삶이어야 한다. 그날 우리가 모여서 나눴던 고민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삶과 배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