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광고·음반·영화 등 사회전반 판금 사례 소개
“보약의 최고 역사를 자랑하는 ‘만수백보환’에는 남성 호르몬ㆍ여성 호르몬이 다량 포함돼 성 생활을 돕습니다”
언뜻 요즘의 발기부전 치료제나 ‘성인광고’를 연상시키는 광고문구지만 실은 일제 시절 우리나라 신문 등에 실렸던 약 광고 문구의 일부분이다.
일제 경찰은 이 광고문에 “음란한 문구가 많아 광고의 도를 넘어섰고 풍속을 어지럽힐 우려가 있다”며 삭제 조치했다.
7일과 8일 서울대 규장각에선 이처럼 당시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신문 광고부터 만평, 음악, 미술, 영화, 문학 등에 걸쳐 이뤄진 일제의 검열 조치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한국은 물론 대만과 만주국의 검열 사례가 소개되며 해방 이후 미군정 시대에도 일제 시대와 유사한 검열 조치가 취해졌음을 입증하는 사료들이 제시된다.
‘일제하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검열에 관한 새로운 접근’이란 주제로 열릴 심포지엄의 참석자들이 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치안’과 ‘풍속’을 두 줄기로 삼아 세세한 검열 기준을 만들되 사안별로 통제를 가했다.
1936년 신문기사 금지표준에는 군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나 관공서의 내부 문서를 입수해 쓰는 기사는 검열 대상에 올랐고 남녀가 포옹하거나 입맞추는 장면을 담은 사진ㆍ엽서 등과 피임 방법을 소개한 책도 검열의 ‘철퇴’를 맞았다.
‘방랑인’(김용환 작곡·1933)이나 ‘폐허에서’(이면상 작곡·1933) 등의 노래는 가사 중에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거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판매 금지됐고 집안일 하는 남편과 구박만 하는 아내를 그린 ‘여천하’(이홍원 작· 1933)는 남존여비 경향을 풍자했다며 역시 판매 금지됐다.
“모던걸 아가씨들 둥근 종아리 데파트(백화점) 출입에 굵어만 가고 / 저 모던보이들의 굵은 팔뚝은 네온의 밤거리에 야위어 가네”라며 일제 치하 ‘신세대’를 풍자한 ‘뚱딴지 서울’(고마부 작사·1938)은 중ㆍ일 전쟁 발발 직후란 엄혹한 시대 상황 때문인지 ‘거리 연주 금지’ 처분을 받았다.
작가들이 검열의 ‘된서리’를 피하기 위해 고안한 요령들은 더욱 눈길을 끈다.
소설가 이태준은 ‘고향’에서 고향 얘기를 길게 늘어놔 검열관의 주의를 흩뜨린 뒤 마지막에 ‘이국의 밤경치’를 언급해 일본을 ‘이국’으로 호칭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에 ‘국가성’을 부여했다고 동국대 한만수 교수는 설명했다.
일본 연호 사용을 강요하는 경찰에 저항하는 의미로 서기가 아닌 ‘육 갑자’를 사용하거나 단재 신채호가 읊은 한시를 인용해 ‘금지어’인 신채호를 등장시킨 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