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맛 모르고 먹지마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영덕의 가을 보물 송이

▲ 동해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향이 뛰어난 영덕 송이버섯.
▲ 동해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향이 뛰어난 영덕 송이버섯.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아스팔트와 건물이 한밤중에도 식지 않는 여름. 그 폭염이 지나고,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면 푸른 풀잎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히는 백로(白露)가 온다. 영덕 사람들은 누구보다 이 백로를 기다린다. 무엇 때문일까?

경북 영덕에서 20년째 송이버섯을 채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함정식(54)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백로를 기준으로 3일을 전후해 송이버섯의 포자가 형성됩니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가 지나면 버섯을 채취할 수 있어요. 올해는 9월 7일이 백로이니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돈을 투자하지 않고, 자연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채취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송이버섯은 우리 영덕군의 가을 보물과 다름없습니다.”

표고버섯, 능이버섯 등과 함께 한국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송이버섯. 소나무의 잔뿌리에 자라는 송이버섯은 여타의 버섯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향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가을 송이를 맛보지 않고 미식을 논하지 마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영덕의 송이버섯은 유백색 몸체에 짙은 갈색의 갓 빛깔이 돋보이고 쫄깃한 맛을 지녀 예부터 진상품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이와 관련 `세종실록지리지`는 “영덕의 가장 주요한 공물 중 하나가 송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금까지 매료시킨 영덕 송이의 맛과 향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덕은 동해안 태백산맥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영향을 미쳐서인지 다른 지역의 송이보다 향이 뛰어납니다. 우거진 소나무 숲과 버섯이 자생하기 좋은 토양도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식감이 좋은 송이를 만들어내는 한 요인이겠지요.”

 

▲ 송이버섯을 채취하고 있는 영덕군민.
▲ 송이버섯을 채취하고 있는 영덕군민.

함정식 씨의 말에 영덕군산림조합 임진광(56) 상무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비단 향과 맛만이 아닙니다. 송이버섯은 영양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되는 음식이에요. 식물성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한 것은 물론, 비타민B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주고, 몸속 장기의 기능도 향상시켜준다고 알려져 있지요. 또한, 어떤 버섯보다 항암효과가 크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었습니다.”

이에 덧붙여 임 상무는 영덕의 `가을 보물` 송이버섯의 판로개척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송이 자생환경 개선사업의 추진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의 조기 차단 ◆다양한 송이버섯 요리 발굴을 위한 시연회 개최 등이 바로 그것.

“경북도와 영덕군이 중점 추진하고 있는 산림버섯 테크노파크 조성사업과 병행해 영덕 송이축제를 개최하고, 송이버섯 체험장과 가공식품의 개발에도 공력을 들이고 있다”는 것 역시 임 상무의 이어지는 부연이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곁눈질 하지 않는 일관된 작품 활동으로 한국문단에서 이름이 높은 시인 이승철(58)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음식점 주인이 단골에게 주는 서비스라며 라면을 끓여왔는데 거기에서 평소에는 맡아보지 못한 냄새를 느낀 것이다.

“서비스 음식이 겨우 라면이라니...”라는 혼잣말을 하던 이 시인은 냄비 속에서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버섯 한 조각을 발견했다. 바로 그게 영덕에서 채취돼 트럭에 실려 서울로 올라온 송이버섯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조그만 버섯 한 조각의 향이 작지 않은 식당 전체에 진동했다”는 게 이승철의 전언이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그 맛과 향을 인정받는 영덕의 송이버섯이니 그로 인해 거둬들이는 영덕군민들의 수입도 만만찮다. 지난해 영덕의 산림조합에서는 모두 35t의 송이를 수매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57억7천400만원에 해당하는 양이다.

보통의 농작물은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거쳐야만 수확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송이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란 것을 채취하는 것이기에 노동력 이외에는 다른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다른 농작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송이 채취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영덕군의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송이버섯이 하고 있지요”란 임진광 상무의 말에 동의의 고개 끄덕임을 보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송이버섯과 함께 울고 웃어온 함정식 씨는 말한다.

“1년에 길면 한 달, 짧으면 20여일 송이를 캡니다.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고 순전히 내 노력과 땀만으로 가계에 적지 않은 보탬을 주고 있으니, 송이는 내 삶에 내려진 축복이지요. 눈앞으로 다가온 백로를 기다리는 매년 이 시기가 제게는 누구보다도 달콤합니다.”

하지만, 송이를 채취해 그 수익으로 자식을 키우고 부모님을 모신 함 씨에게도 어려움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버섯을 채취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습니까? 또, 군청이나 산림조합이 어떤 부분을 도와주면 영덕 송이가 더 잘 알려지게 될까요?”

출하는 임산물유통센터를 통해 하고 있으므로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함 씨는 마지막으로 영덕 송이의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관련 기관에 부탁하며, 향후 영덕 송이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까지 제시했다.

“지금도 영덕의 송이버섯은 나름의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송이의 40% 가량이 우리 지역에서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워 홍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덕은 대게로도 유명합니다. 영덕 대게는 TV의 갖가지 음식관련 프로그램에 수십, 수백 차례 소개됐습니다. 영덕 송이도 그만한 매력을 가진 음식이니 더 큰 사랑을 국민들에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도 장기보관법을 연구하고, 소량 포장의 제품도 만들어 많은 이들이 더 쉽게 송이버섯을 맛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하겠지요.”

 

▲ 궁합이 잘 맞는 소고기와 조리한 송이 불고기는 향긋한 냄새와 쫄깃한 식감이 더할 나위가 없다. 이렇듯 어느 소박한 요리일지라도 영덕 송이가 들어가면 그 품격이 한층 높아진다.
▲ 궁합이 잘 맞는 소고기와 조리한 송이 불고기는 향긋한 냄새와 쫄깃한 식감이 더할 나위가 없다. 이렇듯 어느 소박한 요리일지라도 영덕 송이가 들어가면 그 품격이 한층 높아진다.

`세계 3대 진미`와는 또 다른 매력 지닌 영덕 송이
`숲 속의 다이아몬드` 트러플도 안부럽다네

세상에는 그 맛과 향기, 색채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식이나 식재료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풍미를 지닌 것들을 `진미(珍味)`라고 부른다. 이른바 `맛과 멋에 죽고 사는` 미식가들은 진미를 맛보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진미의 가장 앞줄에 서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의 식성은 천차만별이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많은 이들이 푸아그라와 캐비아, 트러플을 `세계 3대 진미`로 손꼽는다.

`기름진 간`을 의미하는 푸아그라는 미식가들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최고로 치는 식재료다. 일정기간을 두고 거위나 오리에게 강제로 사료를 먹여 인위적으로 크게 부풀린 간을 먹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잔인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남프랑스에서 생산된 최상급 푸아그라는 서민은 맛볼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팔린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는 푸아그라는 식욕을 돋우기 위해 전채요리로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버터처럼 가공해 빵에 발라 먹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기름기가 많은 푸아그라에 곁들이는 포도주의 선택에도 공을 들인다.

트러플(송로버섯)은 강렬한 향기로 사람들을 입맛을 자극한다. 다른 버섯과 달리 땅 속에서 자라는 트러플은 떡갈나무나 헤이즐넛나무 인근에서 자주 발견된다. `숲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이 버섯은 인공적인 재배가 불가능해 훈련된 돼지를 이용해 채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흙이 잔뜩 묻은 돌덩이처럼 보이는 트러플은 그 모양새와는 전혀 다른 매력적인 향을 지녔다. 1kg당 600만원이란 높은 가격에 거래됨에도 유럽의 미식가들은 트러플이 지닌 향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너무 비싼 식재료인 탓에 고급 레스토랑 주방에는 트러플을 보관하는 금고도 있다.

철갑상어의 알을 염장한 캐비아 역시 고위층의 결혼식이나 생일파티에서 샴페인과 함께 즐기는 최고의 진미 중 하나다. 러시아 사람들은 캐비아를 두고 “조그만 알 하나하나에 깊은 바다의 맛이 담겼다”고 말한다. 많은 양이 카스피해 인근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더불어 이란의 부자들도 캐비아를 즐긴다.

고대 페르시아의 왕과 귀족들까지 매혹한 캐비아. 일부 미식가들은 그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금으로 만든 숟가락으로 떠먹기까지 한다. 캐비아는 산도가 높아 다른 금속으로 만든 식기를 사용하면 특유의 식감이 사라진다.

이처럼 `세계 3대 진미`라고 불리는 푸아그라, 트러플, 캐비아는 보통 사람들은 맛보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과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그에 비하면 송이버섯은 보다 `친숙한 진미`라고 할 수 있다. 푸아그라처럼 살아있는 동물을 학대해서 만든 게 아니고 캐비아를 먹을 때처럼 금 숟가락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트러플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한 송이버섯.

다가오는 가을엔 한 번쯤 영덕 송이버섯의 향과 맛을 즐김으로써 소박하게나마 `한국의 미식가`가 돼보는 건 어떨까?

<끝>/이동구·홍성식기자

    이동구·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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