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부실은행 구조조정, 채권보유·예금자도 손실 감수
경제위기 해결 새모델 될 가능성 높아… 시장 불안 확산

▲ 파니코스 데메트리아즈(왼쪽) 키프로스 중앙은행 총재와 미할리스 사리스 재무장관이 26일(현지시간) 키프로스 중앙 은행의 건물에서 열린 기자 회견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채권단과 키프로스 정부 간의 막판 합의로 키프로스 경제의 파산은 막았다.

그러나 이번에 합의된 구제금융 조건과 자구책 마련 방식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국 구조조정의 새로운 모델이 될 가능성이 일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은 논란 끝에 양대 부실은행의 10만 유로가 넘는 예금에 최대 40%의 헤어컷(손실)을 감수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 키프로스에 10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 방식은 선순위 은행채권 보유자와 예금보호 한도를 넘는 고액 예금자도 은행 부실에 따른 손실을 분담토록 한 것 등이 기존의 구제금융 조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단 구제금융 조건이 합의된 데 대해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유럽 증시는 키프로스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로 25일 오전장에서 1% 안팎의 상승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키프로스의 구제금융안은 경제위기에 처한 다른 국가들을 다루는데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시장이 동요했다.

키프로스처럼 다른 국가들도 은행이 구조조정되고, 고액 예금자들이 손실을 부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유럽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섰고 미국 증시도 하락세를 나타냈다. 특히 금융권의 부실이 문제가 된 이탈리아 증시는 폭락세를 보였다.

키프로스 은행에 자금을 지원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즉각 시장의 불안을 차단하려 시도했다.

에발트 노보트니 ECB 정책의사는 “키프로스는 특별한 경우로 다른 사례의 모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데이셀블룸 의장도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금융 방식은 예외적인 것이라는 해명 발언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논란은 더 확대되고 있다.

그가 평소에도 금융권의 부실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을 역설해왔기 때문에 유로존의 금융 위기에 빠진 국가의 구제방식에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관측이다.

앞으로 구제금융이 필요한 국가들은 키프로스의 사례와 같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키프로스 구제방식은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위기국가들이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이에 상응하는 자구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앙켈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키프로스 구제금융 방식에 만족감을 표명한 것은 독일 측의 주장이 관철됐음을 보여준다.

키프로스 구제 방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방만한 금융권에 대해 징벌적인 조치를 가하고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유럽납세자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찬성하는 쪽 논리다.

반면 새로운 방식은 은행 예금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위기국에 대한 투자 의욕을 꺾어 경제회복에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키프로스 방식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키프로스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이 금융위기를 해소하고 조기에 경제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등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키프로스 금융권의 혼란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브뤼셀=연합뉴스

    브뤼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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