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②
이카로스의 추락과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

▲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 천장 벽화.

그리스 도착 둘째 날 델포이와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그리스 정교회의 모범됨을 볼 수 있는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Monastery of Hosios Loukas)에 들르기로 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일행은 큰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작은 가방 하나씩 챙겼다. 시간을 절약하며 많은 곳을 구경할 방법을 찾다 보니 현지 여행사를 물색하게 되었는데 그리스에서 20여 년 살면서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는 조 선생과 닿게 되었다. 그가 9인승 봉고차를 끌고 나타난 것은 오전 8시 조금 넘어서였다. 우리는 산뜻한 맘으로 차에 올라 출발했다. 길 곁의 건물 벽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그리스 글자와 그림들이 영화 필름처럼 이어졌다. 어디든 마찬가지다.

붉은색, 청색, 검은색….

경제 불안에 따른 불만을 그렇게 표출한 것도 그 중에는 많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공항에서 아테나로 들어오면서도 그런 낙서를 숱하게 보았다. 폐가처럼 짓다 만 건물도 여러 채 보았다.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길 옆 건물에서도 그랬다. 실물 경제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 같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자랑했던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한국의 언론에도 `그리스 총파업 또 다시 마비`란 제목이 종종 타이틀로 뜬다. 긴축과 동시에 이뤄지는 증세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들의 목소리는 크다. 현재도 금융 수혈은 진행중이다.

 

▲ 남쪽에서 바라본`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 전경.

창 밖을 보던 난 광장 가운데 있는 조형물에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갔다.

`이카로스의 추락!`

그랬다. 철로 만든 조각품이 로터리 가운데 땅에 박히듯 거꾸로 놓여있다. 이카로스의 추락은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란 것을 가르치는 그리스 신화다.

아테네가 미노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전설적인 왕.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로, 법을 제정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죽어서는 저승의 재판관이 됨)와의 전쟁에서 패했을 때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는 사람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먹잇감으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일부러 포로가 되어 크레타로 갔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와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 사이에 낳은 황소를 닮은 괴물이다. 그는 매일 사람을 잡아먹어야 살 수 있다.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 공주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탈출한다. 공주에게 탈출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라비린토스(Labyrinthos : 미궁)를 만든 다이달로스였다. 이것을 안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 속에 가뒀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라도 탈출할 수 없는 미궁. 손재주가 좋았던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으고, 밀랍으로 깃털을 붙여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한다. 날기 전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너무 높은 하늘은 밀랍이 녹으니 올라가지 마라.` 란 주의를 준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오르다 그만 바다로 추락하여 죽는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의 시신을 건져 올려 섬에 묻었는데, 이 섬을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호시우스 루카스 성인의 관.

`이카로스의 추락` 신화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 경제가 이카로스의 추락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게 된 것을 가이드 겸 운전을 담당한 조 선생은 이야기한다.

“그리스 경제의 몰락에는 정치인들의 썩어 빠진 부패와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그리고 그리스인들의 낙천적 성격이 끌고 온 것입니다.”

이 말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상은 좋지만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일 때, 백성은 허황된 꿈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리다 산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 좌측으로 테베 마을을 멀리 두고 있다. 테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의 신화 발상지이다. 이어서 파르나쏘스 산이 보이는 곳 가까이 `레테(망각의 강)`란 신화와 관련된 곳을 지난다.

그리스는 곳곳이 신화의 배경이며 고전의 터전이다. 신화는 스토리 텔링으로 이카로스 아버지가 만든 깃털 날개를 달고 세계 곳곳으로 날아간다.
 

▲ 아테네 시내의 골목 낙서.

오늘의 첫 목적지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였다.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은 델포이에서 37km 떨어진 곳으로 스테리 헬리콘 산기슭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수도원으로 걸어가는데 앞쪽 계곡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수도원 입구 앞 넓은 공터에는 수령 수백 년 되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성지순례로 그곳을 찾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한가해 보이는 것이 평화롭다. 고된 삶의 길에서 정적인 수도원을 찾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며 지친 영혼에게 신선한 바람을 넣어주는 일이다.

나무 그늘에서 오밀조밀한 수도원 전체의 모습을 바라본다. 참 예쁘다. 건축의 낯섦이 이국의 모습을 확 느끼게 한다. 연붉은 벽돌로 쌓은 독특한 건축물이 건축미학의 모델이 될 것 같다.

그리스는 그리스 정교가 국교다. 국민 대부분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하고, 죽으면 영결미사를 드린다.
 

▲ 아테네 시내에 있는 조형물 `이카로스의 추락`.

성인의 성화가 그려진 작은 문을 통과하자 대성당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은 그리스 중세 비잔틴 교회 중 그리스 신화 속 물의 요정 `다프네`란 이름을 따온 다프니(Daphni) 수도원,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모자이크 벽화로 유명한 키오스 네아모니(Nea Moni) 수도원과 함께 1990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들 수도원들은 중기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서로 떨어져 있지만 건축의 형식이나 장식 등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호시우스 루카스 성인은 953년 56세 때에 7개월을 더 살고, 8시간만에 돌아가셨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겸손을 모범으로 삼았으며 치유와 예언의 능력(은사)을 갖고 있었다. 962년 크레타가 이슬람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의 예언처럼 크레타는 동방교회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날도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한다. 지하 한 방에는 루카스의 관도 모셔져 있다.
 

▲ 성당 내부 프레스코 성화.

십자가 형태로 꾸며진 대성당(Katholikon:카톨리콘) 안으로 들어갔다. 사면의 벽은 성화로 가득했다. 둘레의 사각형 건물들이 중앙의 대성당 높은 팔각형 돔을 둘러싸고 있다. 작은 방들을 대성당 둘레에 건축함으로써 실내 공간의 용적률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각 방의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게 꾸몄다. 교회 바닥과 벽면과 천정의 대리석,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 풍부한 장식들 하나하나가 최고의 예술품으로 정교하고 조화롭고 호화롭다. 아치형의 천장에는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조화롭게 프레스코화가 이어진다. 예수의 생애도 있고, 사도들의 모습도 있다. 중앙부 돔의 지름은 9m다. 비잔틴 건축 양식의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 홍예문 형태로 꾸민 통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듯 성화를 올려본다. 천 년 이상의 역사 속에는 한 생애의 삶이 바톤을 이어받듯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외벽을 본다. 돌과 벽돌과 흙으로 쌓은 외벽이 연한 황토색으로 붉다. 밖에서 보는 건물 곳곳의 창문도 아치형으로 정교하고 멋지다. 빼어난 건축인의 손길이다. 천년 전의 출발이 지금도 진행되고 천년 후에도 진행될 것이다. 그것은 이승을 벗어나 후세에 대한 천국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것이 확실함을 호시우스 루카스 수도원에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