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리스트

불가에서는 신도들이 절에 바치는 시주물은 물론 모든 재물은 아껴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적 일화들이 많이 전해진다. 그 중에서도 어느 산중에 훌륭한 선지식이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배움을 위해 찾아가던 수행자가 그 산 계곡 물에 떠내려가는 한 잎의 상추를 보고 배움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시주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선지식은 사이비라고 본 것이다. 사찰의 시주물을 개인의 사유물로 빼돌린 주지 스님이 죽어서 그 절을 맴도는 뱀으로 환생하는 벌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스님들에게 신도의 시주물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사적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불가의 인과율을 빌어 추상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사실 불가가 아니라도 남의 재물을 기부받을 경우 개인이나 법인을 막론하고 함부로 써서는 남의 질책을 받거나 때에 따라선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사찰과 같은 공공성을 띤 법인 단체는 기부자의 기부 목적에 합당하게 재물을 사용해야 하고 사용과정은 물론 사용후에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상식이다. 설사 목적외 사용에 대해 법적 처벌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기부자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했음을 밝히는 것이 도리다.

최근 조계종의 승적에서 제적된 한 멸빈 스님이 조계종의 지도급 스님들이 밤새워 술마시고 담배피며 도박을 했다며 몰래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 증거물을 첨부해서 고발한 사건은 속인들에게 종교의 막장타락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이들이 호텔에서 도박을 했다는 범죄는 접어두더라도 이들이 흥청망청 쓴 돈이 신도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생각하면 불가의 시주물에 대한 몇몇 교훈적 설화는 오히려 잠꼬대 같이 들릴 수 있다. 더욱이 조계종 교구 본사의 하나인 백양사 조실 큰스님의 열반후 49재에 참석차 온 스님들이 이 짓을 했다는 것은 이들이 지도층 스님임은 고사하고 승복을 입었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가 저술한 <선가귀감>에는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라고 통탄하셨다”는 구절이 있다. 또 주해에는 “말세의 비구에게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박쥐중>이라고도 하고 <벙어리 염소중>이라고도 하며 <머리 깍은 거사> <가사입은 도둑>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고 덧붙였다. <선가귀감>의 다른 구절에서는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도박 스님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볼 일이다.

이 사건이 있고난 직후 조계종 총무원이 간부들의 사퇴와 총무원장 명의의 참회문 발표, 도박연루자 처벌을 위한 조사착수 등 사태해결에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종단권력과 종단인사를 둘러싼 암투와 금전비리 등은 과거에 일부 드러난 바도 있고 소문으로도 무성하다. 일부 스님들의 호화사치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조계종 사찰의 예결산 내용의 70%가 종단에 보고도 되지 않은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신도들의 시주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집행된다는 것이다. 108배의 참회로만 해결될지 의문이다. 엄격한 제도적 장치와 이를 작동시킬 의지가 없이는 이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종단의 지도층 스님들의 불법타락상이 속인들의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면 결국 이번 경우처럼 검찰의 사정을 받는 결과가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는 수행자가 속인들을 교화하 보다 속인들이 수행자를 가르치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계의 사회지도층 비리, 어린 학생들의 연쇄자살로 인한 교육계의 혼란 등 사회가 갈 길을 잃고 있다. 훌륭하신 스님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종단의 지도층마저 속세의 타락을 가속시킨다면 중생들은 누굴 믿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홍종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