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황톳빛 강물이 흘렀듯 물레도 돌고 돌았으리라

▲ 도에공방에 전시된 작품들은 수백만원서 천만 원 이상하는 것도 수두룩하다.

괴레메 박물관을 견학한 후 에센테페의 `부모자상` 바위를 찾았다. 이 바위는 카파도키아를 상징하는 대표적 바위다. 버섯바위 형태의 커다란 바위 두 개와 작은 바위 하나가 그림엽서 속에 자리를 튼다. 엽서 속에 쏘옥 들어가는 멋진 풍경이다. 컵 장식으로도 들어가고, T-셔츠 속에도 들어간다.

괴레메 마을을 배경으로 있는 이 바위를 사람들은 엄마 바위, 아빠 바위, 자식 바위라 일컫는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버스로 10여 분 달리자 `데브렌트`의 낙타봉이 나타난다. 응회암 바위들이 세월의 흐름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다.

가지각색이다. 낙타봉은 그 형태가 낙타를 닮았다.

돌아다니던 개 한 마리가 멈추자 낙타봉과 입 맞추려는 모습이 된다. 사진을 찍는다. 종종 사진은 현실보다 피사체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힘을 갖고 있다. 내가 찍은 이런 사진이 후일 내 과거를 보다 아름답게 추억하는 힘이 될 것이다.

 

▲ 아바노스 도예공방에서 도예가가 도자기에 물감을 넣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지형을 보노라면 깨닫게 된다. 오랜 세월의 풍상은 자연의 손길이면서 또한 그 자체가 신의 손길임을. 참으로 기묘한 기암괴석 모습 하나 하나가 그야말로 감탄사를 터뜨리고,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하고, 다시 오도록 마음 먹게 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비와 바람과 햇살로 뭉쳐놓은 시간일 것이다.

멋진 풍경의 잔상을 머릿속에 끌면서 이동한다. 터키에서 가장 긴 강이라 일컫는 크즐마크 강을 내려다본다.

 

▲ 밸리 댄스를 추는 댄서

크즐마크 강은 카파도키아의 아바노스란 마을을 관통한다. 황톳빛 강물이 주는 천혜의 혜택으로 이곳 사람들은 바닥 흙을 가지고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것도 기원전부터…. 그렇기에 아바노스는 터키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는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다.

기원전부터 빚어온 아바노스 도자기

수백서 수천만원짜리 작품도 수두룩

`스머프 마을` 파사바의 전경 정겨워

아바노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 건너 마을에 있는 도예 공방을 견학하기로 했다. 공방은 토굴이다.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자 미로처럼 생긴 터널이 연결된다. 도공들의 작업 현장이 펼쳐진다. 흙을 치대는 곳, 물레로 도자기를 빚는 곳, 도자기에 무늬와 그림을 넣고 새기는 곳, 굽는 곳, 완성된 도자기를 전시 판매하는 곳.

안내하는 직원이 우리를 보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코리아라 하자

“대한민국 짝짝짝!”

 

▲ 터키 전통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의 위력이 이곳에서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우리를 맞는 그는 기본적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들르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을 맞은 도공이 물레를 돌리며 시범을 보인다. 컵을 만드는데 한 번의 손길로 뚜껑까지 빚는다. 신기하다. 능숙한 기술이다. 관광객이 실습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친절하게 설명도 곁들인다. 실습을 끝낸 우리 일행들은 그림 넣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도예가가 도자기에 물감 넣은 장면을 유심히 본다. 보통 정성이 아니다. 붓으로 세밀화를 그리는 화공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손놀림이 차분하고 정교하다. 작품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장면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는다.

작품 전시실에서는 도자기를 판매한다. 전문 도공의 작품 값이 만만치 않다. 눈에 차는 작품 값을 물으면 백만원 이상이다. 천만원 이상하는 것도 수두룩하다.

갖고 싶지만 얇은 주머니를 의식한다.

도예가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밤을 낮처럼 투명한 의식으로 보낸 때도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닥지닥지 묻은 도자기 공장을 나온 우린 만화영화 `스머프 마을`의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파사바`로 갔다. 이곳 역시 요정 같은 버섯바위가 널려 있는 곳이다. 고대의 수도사 성 시메온이 머문 바위가 있어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한다.

수도승의 명상 춤 `세마춤`에 숙연

한국서도 선풍적 인기 끈 밸리댄스

열정적인 춤 동작은 `황홀경` 선사

 

▲ `파사바`의 요정 같은 버섯바위.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카파도키아 고원 햇살이 땅 끝으로 기울 때였다. 긴 해 그림자를 요정같은 바위는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고원의 겨울 해가 진다. 짧은 햇살이 여행객의 발길을 재촉한다.

파사바를 거쳐 로즈 밸리 마을을 지나자 해는 노을만 남기고 있다. 지나는 마을 이름이 `선셋`이다. 어딘지 모르게 노을에 걸맞은 이름이다. 숙소로 되들어가면서 나는 운전석 옆에 놓인 책자를 뒤적거렸다.

낯선 의상으로 춤추는 사진이 나의 눈을 확 끌어당긴다. 달콤한 유혹이다.

홍보용 책자에 실린 곳에서 공연하는 시간을 물으니 저녁 8시에 공연한단다. 공연 장소는 우리 숙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고 했다.

원하면 기사분이 안내하겠다고 덧붙인다.

터키의 댄스 중 밸리 댄스는 꼭 보고 싶었던 춤이다. 이틀 전 이스탄불 갈라타 타워 레스토랑에 들렀지만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우리를 안내한 기사는 밸리 댄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터키의 전통 춤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약했다. 이스탄불에 비해 입장료는 훨씬 쌌다. 더욱이 입장료에 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주류까지 포함된다고 했다.

1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다.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하루의 많은 일정이 피곤하게 했다. 여행 일정에 피곤을 끌고 다니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다.

다른 사람 몇과 7시 30분 호텔 앞에서 차를 기다렸다. 차를 타고 간 곳은 숙소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아사르 바바(YASAR BABA)`란 곳이다. 지하였다. 들어가는 입구가 제법 넓고 깨끗했다. 지하지만 홀은 넓었다. 이곳 마을은 많은 것들이 지하로 만들어진 기분이다.

홀을 중심으로 테이블이 문어 다리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다. 홀 자체가 공연장이고 주변 테이블이 관람석이다. 홀 천장에는 만국기가 달려 있다. 태극기를 찾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다시 찾아보았다. 풍선 뒤에 태극기 하나가 보인다. 풍선에 가려 있었던 것이다.

내가 들어갔을 땐 사람 서너 명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이 단체로 들어왔다. 일본 사람들은 한 줄로 질서를 지키며 자리에 앉는다. 이어서 유럽인 몇 명도 관람객으로 들어온다. 중국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한국 사람도 들어온다. 홀 주변 테이블은 다국적 관광객이 꽉 찼다.

공연은 정확히 8시부터 시작했다.

첫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첫 번째 공연은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사회자가 말한다.

세마젠의 세마(Sema)춤이다.

 

▲ 데브렌트`의 낙타봉을 배경삼아 돌아다니던 개 한 마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마춤은 터키의 중남부 콘야 지역에서 발생한 이슬람교 한 종파인 메블라나에서 데비쉬라고 불리는 수도승들의 명상 춤이다. 이 세마춤은 춤이 아니라 기도다. 수백 번 때론 수천 번 회전하면서 무아지경의 상태로 신과 가까이 하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단순해 보이는 복장이다. 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원통형의 높은 모자는 묘비를 의미하고, 넓은 치마는 수의를 뜻한다. 흰색저고리 위에 무덤을 상징하는 검은 망토를 입는다.

침묵 속에 무희들은 팽이 돌리듯 자신의 몸을 돌리고 돌린다.

숙연해진다. 종교의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은 춤을 추지 않고. 춤추는 세 명의 무희들 사이를 걸어다녔다. 무희들은 홀을 가득 채우며 빙빙 돌았다. 흰 바지 위에 입은 치마로 하얀 꽃을 활짝 피우듯 넓게 펼쳤다. 원심력과 구심력을 이용한 춤이다. 우아하다. 은은한 불빛 밑 분위기가 차분해진다.

흰치마에서 반사하는 색깔과 사진촬영 불가라는 `엄명`이 세마춤에 대한 인식을 기묘하게 한다.

터키 전통무용이 시작되었다. 사내들이 처녀에게 구애하는 풍경을 춤으로 꾸민 내용이다. 갖은 선물을 처녀에게 전하지만 처녀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스토리가 있는 춤이다. 선물보다 멋진 남자를 찾는 여자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끝나자 사내 네 명이 나와 신명나게 발을 움직인다. 그 발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보는 사람의 숨을 가쁘게 한다. 무용이 끝나자 관중석에 있는 손님들을 무대로 불러들인다.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강강술래 비슷한 모습으로 모두가 즐겁다. 한바탕 터키풍의 춤사위가 끝나고 무대는 새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테이블에는 터키 전통술이라며 와인이 제공된다. 독주도 제공하는데 독하다. 맥주를 주문하니 맥주도 갖다준다. 두 시간 정도 흘렀을 때였다. 내가 보고 싶던 밸리 댄스 공연이다.

천장에서 무희 한 명이 무대로 내려오는데 의상이 섹시하다. 잠자리 날개 같은 무용복에는 금빛, 은빛 장식을 달았다. 사이키 불빛에 그 장식이 종소리 들리듯 반짝반짝인다. 모든 이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은다. 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전통음악에 맞춰 손끝을 비튼다. 엉덩이, 가슴 놀림이 야하다. 그 율동이 끈적끈적하다.

밸리 댄스는 다산을 비는 터기의 전통춤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춤이 끝나자 각 테이블에 있는 남자 한 명씩 불러 밸리 댄스의 기본 동작을 가르친다. 따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언어가 필요 없다. 몸동작이면 된다. 손끝과 발끝의 움직임, 엉덩이의 흔듬. 멋지다. 흥겹다.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진다. 불려나온 사내들의 엉덩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 모습이 웃음거리다. 무대에 초대한 손님을 테이불로 보낸 무희는 다시 춤을 선사한다. 공연은 댄서의 열정적인 몸놀림으로 매듭지으며 다시 천정에서 내려온 투명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사라진다. 밸리 댄스의 춤동작이 잔상으로 술잔에 어린다. 이국의 밤이 깊어진다.

10시30분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까지 가는 밤하늘에 마차부자리의 카펠라가 반짝인다. 한국에서도 쉽게 찾던 밝은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