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전당대회 돈봉투 돌리기 폭로가 검찰 수사로 비화되면서 여야 정당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여권에서는 국가의전 서열 2위인 박희태 국회의장이 혐의를 받으면서 한나라당이 차떼기 오명을 겨우 벗어나는 참에 돈봉투 정당의 오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통합민주당에서도 돈봉투 전당대회가 불거지다가 당지도부의 흐지부지 넘기기로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역시 검찰의 향후 수사방향에 따라 어떤 상황을 몰고올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여파로 통합후 첫 전당대회는 모바일 투표에 참가한 이른바 엄지족이 맹위를 떨치는 바람에 돈봉투와 동원을 없애는 정당사상 초유의 성과를 올리는 계기가 됐다.

검찰 수사의 진행이 어떻게 되든 이번 돈봉투 사건으로 안철수 교수의 등장에 기가 죽은 기성정치권은 남은 자존심마저 먹칠을 한 셈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돈선거를 막기위한 입법조치를 통해 국민들에게는 선거와 관련, 음식을 대접받지 마라, 돈을 받지 마라고 했고 심지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하는 행사에서 단체장의 상금도 받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각종 문화상의 부상인 상금도 없애버렸다. 특히 선거를 앞둔 요즘 예상후보자와 불가피하게 식사자리를 가질 경우 이제는 밥값을 후보 이외의 사람들이 내는 것이 상례화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돈선거가 많이 정화되었다고 생각해왔다. 일부 사건들에서 공천헌금 문제가 터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선거문화는 상당히 선진화됐다고 믿었던 국민들에게 이번 돈봉투 폭로는 정치지도층의 엄청난 배신이었고 위선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정당의 지도부를 선출하는데 매표행위를 했다면 그 정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은 정당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성과 정체성이 없는 정당이라 매도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같다.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이라기보다 돈이 주인이 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런 정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한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것이 억울할 따름이다. 원천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돈으로 뒤엎어 버린 것이다. 돈봉투사건은 생각할수록 엄청나고 끔찍하다.

통합민주당의 이번 전당대회 대표경선이 사실상 모바일선거가 된 것도 돈봉투사건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언론의 분석이다. 대표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돈을 내고 빌린 버스로 대의원들을 투표장으로 실어 나르던 오랜 관행이 돈봉투수사로 위축됐다고 한다. 대의원 투표에는 무려 15.7배의 가중치를 줘도 대의원 투표수는 20만표에 불과한데 모바일 투표는 50만표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의 엄지손가락 향방에 따라 민주당 대표의 당락과 서열이 정해진 것이다. 따라서 모바일 소통에 능한 후보들이 1,2위를 차지했다. 특히 2위로 당선된 문성근 후보는 정계 첫 입문에서 쟁쟁한 기성정치인들을 제치고 바로 제1야당의 2인자로 데뷔하는 성과를 올린 것은 모바일 선거가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면 진입장벽이 높다는 정당의 벽도 쉽게 허물고 평당원도 서열이 수직상승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같은 결과에서 엄지족이 전당대회를 휩쓸게 된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다. 국민참여경선을 전제로 모바일 투표를 채택한 이번 민주당의 대표경선은 일단 돈선거와 동원선거의 관행을 없앴다는 점에서 정당의 선거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일부 모바일 선거지지자들의 표현대로 표심이 바로 민심임을 전당대회 현장에서 보여준 것이다.

고승덕 의원의 돈봉투 폭로가 정치인망신, 나라망신을 가져왔지만 한편에선 돈봉투 없애기를 가져오는 계기를 앞당겼다는 점에서는 생산적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당대회의 모바일 투표는 정당의 정체성을 희석시킬 수 있고 참여자의 조작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엄지족이 정당을 휩쓰는 시대에는 정당의 정체성과 함께 당원이란 무엇인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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