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보경사
포항 보경사
  • 관리자
  • 등록일 2009.09.17 20:00
  • 게재일 200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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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장이나 그곳을 대표하는 혹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 있다. 포항에도 많은 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 운제산, 비학산, 내연산이다.

오늘 소개할 보경사를 품은 내연산(710m)은 포항시 송라면과 죽장면 그리고 영덕군 남정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원래 종남산(終南山)이라 불리다가 신라 진성여왕이 이 산에서 견훤의 난을 피한 뒤에 내연산(內延山)으로 개칭한 것으로 전해진다. 긴 계곡을 끼고 연결되는 등산로와 12폭포 등 수려한 경관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1733년에는 겸재 정선이 청하 현감으로 와서 내연산 폭포를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가 지금도 남아서 전해진다.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향으로 가다 보면 송라면에서 보경사 방향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우측으로 진입 후 마을 길을 따라 5분여 정도 가다 보면 보경사 주차장이 보인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년) 중국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해 창건되었다. 지명은 왕에게 자신이 진나라의 한 도인에게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지명과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堂)을 건립하고 나서 보경사(寶鏡寺)라 하였다.

한편, 조금 늦은 시기의 기록이지만 1588년에 쓰인 `보경사금당탑기`에 적힌 보경사의 창건 동기는 약간 다르지만, 지면의 한계로 소개하는 힘들고 여기에도 `십이면원경`과 `팔면원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팔면보경이 보경사의 창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보경사는 창건 이후 성덕왕 22년(723년)에는 금당 앞에 5층 석탑을 조성하였고, 경덕왕 4년(745년)에도 중창하였다. 그리고 고려 고종 1년(1214년)에 승방 4동과 정문을 중수하고 범종. 경(磬). 법고 등도 완비하였다.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에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영조 1년(1725년)에는 성희와 관신이 명부전을 옮겨지어서 단청(丹靑)하였으며, 성희는 괘불을 중수하였는데, 이때의 사세가 가장 컸다고 전해진다.

근대에 와서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1921년까지 전당과 탑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 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보경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적광전(寂光殿)인데 주존인 비로자나불과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1678년(숙종 3년)에 중건한 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적광전 앞에 5층 석탑이 있다. `보경사금당탑기`에 의하면 신라 성덕왕 22년인 당나라 혜종 계해년(723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탑의 양식으로 보아 당나라가 아닌 고려 현종 14년인 계해년(1023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어 날렵함과 상승감이 돋보인다. 1층 몸돌 앞뒤로 자물쇠와 문고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곳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는 의미이다. 적광전과 대웅전을 지나 계단 우측을 보면 작은 전각이 보이는데, 보물 제252호인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이다.

고려 중기의 승려인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의 탑비이다. 원진국사는 경북 상주 사람으로 성은 신씨, 자는 영회, 법명이 승형이다. 1215년 대선사의 지위에 오른 후 왕명에 의하여 보경사의 주지로 부임하여 만년을 보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의하면 고종이 사람을 보내어 여러 차례 왕사(王師)로 봉하려 하였으나, 끝내 왕사의 지위를 사양하였다. 1221년 원진국사가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이 국사(國師)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고종 11년. 1224년)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썼다. 이 비문은 구양순체의 글씨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달함을 잘 살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신을 높이 183cm, 너비 104cm, 두께 17cm이다. 원진국사비를 등지고 바라보면 원진국사부도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작년까지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었는데 지난 봄부터 공개되고 있다.

담장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5분정도 올라가면 소나무 숲에 보물 제430호인 원진국사부도가 보인다. 평면 팔각을 기본으로 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부도로 높이 4.5m이다. 부도는 승려의 묘탑(墓塔)이란 뜻이다. 원진국사 부도는 팔각을 기본으로 중심에 장대석을 이용하여 넓은 탑구를 마련하고, 중앙에 사각형으로 된 지대석을 놓았다.

하대석은 3단의 팔각석재로 되었다. 밑의 2단은 표면에 아무 조각이 없고, 상단은 복련석으로 윗면에 단엽의 연화문 32판을 조각하였으며, 그 중앙에는 2단의 각형 굄이 있어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우주형이 있을 뿐 아무런 조각이 없다. 팔각의 탑신이 길고 커서, 부도의 높은 느낌이 강조되고 있다. 탑신에는 적광전 앞의 5층 석탑처럼 자물쇠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 역시 사리가 보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건조연대는 사찰 경내에 있는 원진국사비 명문에 따라 1224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경사만을 살펴보려면 두 시간 정도면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한나절의 시간을 내서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내연산 등반도 꼭 같이 권하고 싶다. 가을이 서서히 깊어간다. 이번 주말도 좋고,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가 단풍이 깊어가는 계절에 보경사와 내연산을 찾으면 이 가을이 더욱 깊고 풍성하게 느껴질 것이다.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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