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절터에 5층 석탑 두 기·불상대좌만 남아 있어
사자상으로 표현된 `신수상` 신라석조예술 극치 보여줘

경주 불국사에서 시작되는 토함산 순환도로를 따라 석굴암에서 감포방향으로 가다 보면 계곡 건너편 언덕 위에 5층 석탑이 보인다. 지나면서 보면 탑신부만 보이는데 이 탑이 바로 국보 제236호인 월성 장항리 사지 서(西) 오층석탑이다.

도로 옆에 조성한 주차장 아래로 향한 돌계단과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5층 석탑이 있는 장항리 절터로 올라가는 길을 만들었지만, 낙석이 계속 발생하여 지금은 비탈면 보수공사 중이다. 주차장에서 감포 방향으로 50여 m 정도 더 내려가면 임시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에 주차하고 올라가면 된다. 장항리 절터는 토함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는 곳에 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대종천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를 지나 대왕암 근처에서 동해와 만나게 된다. 사찰의 이름을 알 수가 없어 마을 이름을 따서 장항리 절터라고 부르고 있는데, 원래 장항사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이 장항리로 불리게 되었는지도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다.

절터는 계곡의 비교적 높은 언덕 위에 있고, 현재 5층 석탑 두 기와 불상대좌가 남아있다. 석탑에서 약 10m 정도 떨어진 불상대좌의 주변으로 금당터를 확인할 수 있는 초석이 있다. 금당의 기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이며, 초석으로 미루어보아 정면과 측면이 각각 세 칸으로 된 그다지 크지 않은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당 터 가운데 놓여 있는 불상대좌의 크기는 하대석 높이 0.6m, 최대 폭이 2.4m이며, 상대석은 높이 0.53m, 지름 1.84m의 각기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 8각으로 된 하대석의 안상속에 신장(神將)과 신수(神獸)상을 번갈아 가며 높은 부조로 새겼다. 특히 사자상으로 표현된 신수상은 포효하는 듯한 생동감과 익살스러움이 넘쳐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데 신라 석조예술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둥근 상대석에는 연화문을 새겼으며, 그 가운데에 불상을 안치했던 깊고 큰 홈이 남아 있다.

불상대좌 위에 있던 석조 불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어 있었는데, 1932년 서탑을 복원할 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겼으며, 연재 북쪽 정원에 전시되어 복원과정을 거치고 있다. 언뜻 보면 좌상처럼 보이나 광배 일부와 무릎 이하가 결실되었다. 머리와 얼굴 모습 그리고 광배에 새겨져 있는 화불 등의 조각 수법을 볼 때 8세기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으로 판단되며, 현존 높이 3m이나 실제로는 4m 이상 되는 장육상의 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당 역시 이 불상의 안치를 위해 중층구조를 가진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인 장항사의 모습은 쌍탑을 배치한 통일신라시대의 가람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나머지 절터가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돼 강당이나 회랑의 존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금당터 남쪽 약 15m 거리에 있는 서탑은 1925년 도굴범이 탑 속에 있는 사리장치를 절취하기 위해 폭파하면서 파괴되어 있던 것을 1932년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복원된 서탑은 높이 약 10m로 노반(盤)까지 남아있다. 하층기단은 비교적 넓고 높으며, 초층 탑신의 4면에 도깨비문양의 문고리가 장식된 두 짝의 문이 모각되어 있다. 그 좌우에는 연화대좌 위에 서있는 고부조의 인왕상(仁王像)을 조각하였다. 인왕상은 금강역사라고도 하는데 문을 지키는 신장(神將)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4면에 새겨진 8개의 인왕상은 얼굴표정과 울룩불룩한 근육, 나풀거리듯 새겨진 옷과 여러 가지 장식이 아주 섬세하게 새겨진 수작으로 무서운 인상을 주기보다는 심술궂은 장난꾸러기와 같이 친근함이 느껴진다.

동탑은 계곡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6년 2월에 인양하여 현재 위치에 놓게 되었는데 남아있는 부재로 보아 서탑과 같은 규모이나 인왕상의 조각기법이 서탑에 비해 조잡해 보이고, 서탑과 달리 인왕상 아래에 연화대좌도 없어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 경주박물관장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정양모 씨는 장항리 절터의 서편 5층 석탑을 본 감흥을 `뭉클한 아름다움과 위대한 소박성`으로 표현했다. 예전과 달리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지금은 언제든지 이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보문단지에서 덕동댐을 지나는 도로를 따라와도 좋고, 앞서 말한 토함산 순환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어느 문화유산이든지 걸작으로 회자하는 곳에는 `가슴 뭉클한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이번 주말 아이들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아 다이너마이트를 동원한 도굴꾼의 무자비한 파괴에도 살아남은 5층 석탑이 자연과 어우러진 `뭉클한 아름다움`과 석탑의 인왕상과 불상대좌의 사자상이 전하는 익살스러운 `위대한 소박성`을 느껴봄이 어떨까?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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