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립박물관 어떤 유물 전시되나
◇포항 화산 및 화석 관련 유적
포항 지역의 첫 인류 활동은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며, 정식 발굴조사가 아닌 지표조사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2000년 강원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동해면 임곡리유적이 처음 발견됐고, 장기면 산서리유적(새터유적)이 대표된다. 임곡리유적은 영일만의 해안단구(海岸段丘) 지형에 돌날몸돌과 돌날이 채집됐고, 산서리유적의 경우 장기천을 따라 형성돼 있는 하안단구(河岸段丘) 지형에 돌날몸돌을 비롯해 돌날, 긁개, 찌르개, 자르개 등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됐다. 그 외 기계면 구지리 구석기유물산포지와 화대리 구석기유물산포지가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 발견 사례 없지만 흥해읍 오도리 일원 빗살무늬 토기편 등으로 미루어 존재 암시
대련리 유적·칠포리 암각화군·지석묘군 등 청동기 시대 생활·분묘·입석·암각화 등 다량 발굴돼
학천리 유적, 초기 철기시대 후기부터 조선시대 묘제 확인 토기 기면 새긴 문양 예술적 가치 높아
학천리 고분군·옥성리 고분군 발굴조사로 3~7세기 전반 포항 최고 지배집단의 흥망성쇠 가늠
호동·양덕·성곡리 유적, 포항지역 가장 큰 규모 취락 유적… 토기가마·기와가마 등 생산유적 확인
고려부터 조선시대 관방유적으로 고현성·장기읍성·청하읍성 등과 서적·지도·회화·문서 등 다수
◇포항 산서리 새터 유적 출토 유물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 및 조사 사례가 전무하지만, 주변으로 구석기시대 유물이 채집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여지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경주 감포읍 대본리유적, 양북면 봉길리유적, 양남면 하서리유적 등 해안을 따라 패총과 여러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고 있고, 특히 흥해읍 오도리 일원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편, 구룡포읍 구룡포리 353번지 유적의 청동기시대 2호 주거지 상부에서 태선침선문 빗살무늬토기편을 통해 주변으로 신석기시대 유적의 존재를 더욱 암시하고 있다.
◇포항 구룡포리 353번지 유적 출토 유물
청동기시대 유적은 2000년 초반, 국토 및 택지개발관 관련해 시·발굴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됐고, 이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료가 보고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생활유적, 분묘유적, 유물산포지, 입석, 암각화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생활유적은 초곡리, 지곡동, 대련리, 남송리, 구만리, 원동, 인덕동, 강사리, 호동, 삼정1·2리, 석병리, 중명리, 성곡리, 이인리, 월포리 유적이 있고, 해당 유적은 모두 나지막한 구릉지와 충적지에 입지하는 특징이 있다. 주로 단도마연토기, 심발형토기, 마제석검, 마제석촉 등 유물이 확인되며, 이를 통해 무문토기시대 전기 후반에서 중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련리유적은 석부, 어망추, 방추차 등 출토 유물을 통해 당시 농경과 어로 활동을 유추할 수 있다.
다음 청동기시대 분묘유적은 크게 지석묘, 석관묘, 옹관묘로 구분할 수 있다. 1962년과 1963년에 기계면 내단리를 비롯해 이 일대의 분포하는 지석묘가 처음 소개됐다. 1992년 흥해읍 달전리의 소재 지석묘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최초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1994년과 1997년에 추가 지표조사가 진행됐고, 동해면 흥환리, 중흥리, 금광리, 상정리, 흥해읍 칠포리, 금장리, 기계면 내단리 등 총 94개소 지석묘군이 정리됐다. 2002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포항 지역의 전면 지표조사가 단행됐고, 당시 81기 지석묘와 함께 암각화, 입석 등 총 141개소 청동기시대 유적이 보고됐다.
지석묘는 기계면과 흥해읍에 약 223기(약 60% 이상)가 밀집돼 있다. 형산강 유역과 그 지류의 하천과 해안을 따라 지석묘는 거의 열을 지어 군집하며, 그 주변으로 마제석검, 마제석부, 마제석촉 등 유물도 함께 발견되었다.
다음 청동기시대 석관묘는 학천리, 마산리, 삼정 1리, 원동 Ⅱ지구, 초곡리 유적이 대표된다. 옹관묘는 흥해읍 옥성리, 오도리, 대련리, 학천리, 마산리, 연일읍 대각리, 대보면 강사리 유적이 있다. 그 외 청동기시대 입석은 신광면 만석리, 흥해읍 흥안리, 금장리, 동해면 도구리, 신정리 유적이 언급되고 있다. 암각화는 흥해읍 칠포리 암각화군(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과 대련리 암각화군을 비롯해 기계면 인비리, 청하면 신흥리, 구룡포읍 성동리, 눌태리, 동해면 금광리, 신정리 암각화가 있다.
원삼국시대는 앞서 역사적 환경을 통해 설명했던 바와 같이 고고학적 자료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여러 소국과 정치집단이 비정된다. 특히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진한의 12개 소국 중 근기국(勤耆國)을 포항 지역에 두고, 다벌국(多伐國)은 흥해, 초팔국(草八國)은 기계, 음즙벌국(音汁伐國)과 비지국(比只國)은 연일 등 약 4개 소국과 정치집단이 비정된다. 따라서 포항 지역은 넓게는 영일군을 중심으로, 좁게는 연일과 흥해를 모태로 형성 및 발전돼 왔고, 그 이후 행정·정치·군사 등 여러 요인의 이합 과정을 거듭했다.
그간 흥해를 중심으로 하는 원삼국~삼국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또 지속 확인되고 있다. 대표 유적은 옥성리, 남성리, 학천리, 마산리, 성곡리 등 주로 고분군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특히 해당 유적은 국도 7호선(동해대로)을 따라 분포하는 특징도 있다. 옥성리 유적은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아우르는 목곽묘와 석곽묘가 중심으로 조형됐다. 무덤의 규모와 유물의 양질을 통해 당시 정치집단의 세력과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포항 원삼국시대 분묘 유적
학천리유적은 초기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와 조선 시대에 걸친 많은 묘제가 조사됐다. 초기 철기시대 석관묘, 삼국시대 목곽묘, 적석(위석)목곽묘, 수혈식석곽묘, 횡구식석곽묘, 옹관묘, 고려~조선시대 토광묘 등 유구가 확인됐다. 특히 규구수금문대부호, 남녀무희문부가구연장경호, 남남무희문부가구연장경호 등 토기의 기면에 새긴 문양은 당시, 사회 문화의 일면을 가늠할 수 있어 높은 학술적 및 예술적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학천리 고분군과 옥성리고분군의 발굴조사를 통해 3세기 말엽부터 7세기 전반까지 포항 지역에 최고 지배집단의 흥망성쇠를 함께 논할 수 있는 중요 유적에 거론되고 있다. 고분군과 함께 남성리의 남미질부성(경상북도 기념물)과 흥안리의 북미질부성과 같은 관방유적이 있다.
생활유적은 호동유적, 양덕동유적, 성곡리유적이 있다. 모두 3~5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수혈주거지로 호동유적은 주거지의 내부에 구들 시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호동유적은 다소 높은 구릉의 정상부에 입지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물론,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주거지가 다량 확인됐고, 이를 통해 포항 지역의 가장 규모가 큰 취락유적에 소개되고 있다.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고분군은 원삼국시대를 잇는 고분군과 함께 국도 7호선(동해대로)을 따라 분포하는 중심 권역이 있고, 냉천을 따라 분포하는 호동고분군, 인덕동고분군, 원동고분군이 있다.
그리고 해안과 인접하는 용흥동고분, 강사리고분군, 대보리고분군, 오도리고분군이 있고, 내륙의 대련리고분과 냉수리고분이 있다. 유적의 묘제는 주로 목곽묘, 적석목곽묘, 수혈식석곽묘, 횡구·횡혈식석실묘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냉수리고분의 경우, 1990년 도로공사 중 처음 발견됐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그 실체가 파악됐다.
삼국~통일신라시대는 성곡리유적의 적심 건물지를 비롯해 토기가마(6세기 후반 이후) 및 기와가마(8세기 후반~9세기 전반) 등 생산유적이 함께 확인되었다. 구만리 3-3번지 유적의 건물지(7~8세기), 대련리 유적의 적심 건물지와 고상 건물지(7세기 후반~9세기 전반), 월포리 유적의 추정 팔각 건물지(7세기 전엽~8세기 전엽), 만석리 82번지 유적의 공방지(8세기 중반~9세기 중반) 등 취락 및 생활유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분묘유적은 초곡리, 대련리, 양덕동, 강사리, 호동, 오도리, 월포리 유적 등 석곽묘, 석실묘, 화장묘가 있다.
이와 함께 불교 유적은 보경사, 천곡사, 오어사 등이 있고, 특히 그 터만 전해지는 법광사지(法光寺址, 사적), 연화사지, 천곡사지, 백운사지, 광흥사지 등이 있다. 법광사지는 2010년부터 최근 2017년까지 총 7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그간 자료를 통해 나온 고식수막새와 단각고배를 통해 7세기 전후로 그 창건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968년 도굴당했던 두 개 탑지석이 다시 회수되면서 탑지석의 석탑기에 새겨진 ‘大和二年 戌申七月 香照師圓寂尼捨財建塔’ 내용을 통해 828년 탑의 건립이 추정되고 있다.
이는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고려∼조선 시대 유적
고려~조선 시대의 유적은 옥성리, 학천리, 초곡리, 남성리, 원동, 정천리 및 신계리 등 유적에서 석곽묘, 토광묘, 회곽묘, 회격묘, 매납유구와 같은 분묘유적이 확인됐다. 학전리, 신계리, 현내리, 항사리, 인덕동, 옥성리, 초곡리, 학천리, 원동, 대보리, 호동, 삼정리, 이인리, 월포리 등 유적에 추정 역원(驛院)을 비롯해 적심건물지, 고상건물지, 수혈주거지, 배수로, 석렬, 우물, 구상유구 등 생활 및 취락 관련 유구가 확인됐다. 이와 함께 세계리, 초곡리, 호동, 지곡동, 이인리, 문덕리 등 상기 유적과 함께 기와가마, 삼가마, 폐기장, 경작유구가 확인됐고, 관방유적은 고현성(古縣城)을 비롯해 장기읍성(사적), 청하읍성, 흥해읍성이 있다.
유물의 다수를 차지하는 조선 시대 유물은 많은 수가 서적이며, 이외 지도, 회화, 문서, 편액 등이 발견됐다. 이외 근현대 유물은 일제강점기 문서와 엽서, 사진 등이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