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에서 출간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이듬해 한국에서 번역되어 대중과 만난다. 200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몇몇 대학에서 강연한 그는 서책이 출간된 2010년과 2012년에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지독히 불의한 대통령(수인번호 716호)이 각종 대국민 행악질과 사기행각을 벌이던 때와 정확하게 겹친다.
이런 현상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 후에 개봉된 영화 ‘명량’에 전대미문의 1762만 관객이 몰린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초비상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그것을 관리할 최고 책임자 (수인번호 503호) 실종과 부패와 무능으로 절망한 관객이 이순신의 지도력에 환호한 것이다. 통제사는 맏아들 회(薈)에게 말한다. “나의 충(忠)은 군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에 정의와 관련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초나라 섭현(葉縣)의 관리인 섭공(葉公)이 제법 자랑스럽게 말한다. “내 고향에 행실이 곧은 자가 있는데, 그는 아비가 양(羊)을 훔치자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양을 도둑질한 아버지를 마을의 공적(公的)인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고발한 자식을 공자에게 의기양양하게 떠벌린 것이다.
이런 태도에 대한 공자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우리 고향의 곧은 자는 그자와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을 감춰주고, 자식은 아비를 감춰줍니다. 곧음이란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공적인 이해관계에 앞서 혈연으로 묶인 부자가 서로를 감싸주는 행위에 방점을 둔 것이다. 공자는 곧음을 위한 곧음이 아니라, 혈족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더 무겁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1925년 소련에서 출간되고, 이듬해에 상연된 영웅-혁명적 드라마 ‘류보피 야로바야’를 떠올린다. 사회주의 10월 혁명의 역사적 정당성과 필연적인 승리 그리고 불패의 혁명정신을 대중에게 각인하기 위해 제작된 특수한 드라마 형식이 영웅-혁명적 드라마다. 수많은 대중이 공연에 등장인물로 참여하여 혁명의 열기를 드높인 아주 새로운 드라마 형식.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류보피는 진실로 믿고 의지하며 아끼는 남편과 함께 혁명의 대의를 위해 분투-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이 반혁명 대열에 서 있음을 확인한다. 그토록 깊이 사랑하는 반혁명 분자 남편을 사정당국에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넘어갈 것인가를 두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던 류보피는 마침내 남편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자식이 아비를 고발하고, 아내가 남편을 고발하는 행태는 아무리 좋게 보고자 해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이 사소한 도둑질이거나 이념적-국가적 반역행위거나 간에 혈족 간에 혹은 부부간에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岐路)에 선다는 것은 정녕 괴로운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양자택일은 우리에게 가혹한 정신적-육체적 고문이 아닐 수 없다.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거대양당은 대차대조표 작성에 여념이 없다. 권력을 향한 그들의 집념은 앞으로도 활화산처럼 불타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재고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것인지, 앞으로 다가올 놀라운 변혁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