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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6주년 기획 특집] 12대를 이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열광하고 추앙하다

등록일 2026-06-22 20:01 게재일 2026-06-2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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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잣집 나눔 400년
1회> 어떻게 알려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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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잣집 전경. 앞쪽이 최부잣집이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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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의 얼’(경최씨교동종친회, 1998) 표지. /김종광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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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드라마 ‘명가(名家)’ 포스터. /김종광 작가 제공 

경주 교동(校洞) 최부자, 최부자댁, 최부잣집. 경주 시민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교(校)자가 들어간다. 교동 대신 교촌(校村)이나 교리(校里)라고도 한다. 다 같은 곳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교동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 2008년 ‘경주교촌마을’이 개장하면서 교촌으로 통용되는 분위기다. 지번주소도 ‘교동’에서 도로명주소 ‘교촌길’로 바뀌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하지만, 최부잣집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다. 그전에는 아는 사람만 알았다. 물론 경주 시민들에게는 익숙했을 테다. 영남 지방 전체에서도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교동법주는 들어봤어도 교동 최부잣집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최부잣집은 20세기(1900년대) 동안 유력 신문과 잡지에 이래저래 기사가 실리곤 했다. 20세기는 신문의 시대였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 실린 기사들은 많은 독자가 잠깐이나마 관심을 가졌을 법하다. 최부잣집? 이런 멋진 집안이 있었어? 환상적인데! 

 

필자는 그 인상적인 기사 전부를 차례로 소개할 계획이다. 그러나 신문 기사들은 최부잣집의 극히 일부만 보여주었다. 
최부잣집을 연구한 학술 논문도 있었다. 1984년에 발표된 「‘경주 최부자네 개무덤’ 설화의 연구」(한석수, 청주교육대학교 논문집 21집)가 대표적이다. 경주 최부잣집과 관련된 전설을 모두 수집해 논리정연하게 분석해 놓았다. 흥미로운 논문이지만 논문답게 극소수의 사람만 열람했다. 

 

본격적인 조명의 시작점은 1990년대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이 틀림없다. 지자체들은 자기 고장의 문물과 역사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내세울 만한 인물도 유적도 없어 고민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았다. 

 

경주는 조명할 인물과 유적이 차고 넘쳤다. 무려 신라 천 년 역사의 수도였다! 다만 대부분이 너무 옛날이야기라는 게 아쉬웠다. 그런데 근현대 400년 역사를 지닌 경주 최부잣집이 있었다. 지자체는 최부잣집을 선양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다. 필연적 흐름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경주 최씨 교동종친회’에서 펴낸 책이 ‘교동의 얼’(1998)이다. 최부잣집의 전반적인 역사가 정리된 책이다. 이 책은 여러 기자와 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최부잣집을 언급하는 기사들이 늘어났다. 연구하는 학자들도 생겨났다. ‘교동의 얼’ ‘일러두기 5항’에 이런 문장이 있다. “조상을 지칭할 때 존칭을 써야 하나, 번잡을 피하기 위해 생략하였으며, 감히 휘자(이름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경어를 쓰지 않았다."

 

필자 역시 번잡을 피하기 위해 존칭, 경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최부잣집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방침이다. 또한 젊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한다. 자(字), 호(號) 등은 물론 한자도 가급적 쓰지 않을 작정이다. 널리 양해 바란다.  

최부잣집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집필한 책이 처음 나온 것은 2004년이다.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전진문, 황금가지)이다. 2006년엔 ‘경주 최부자 500년의 신화’(최해진, 뿌리깊은나무)가 출간되었다. 두 책 모두 종친회(지금은 선양회)에서 낸 ‘교동의 얼’을 바탕으로 했다. 여러 가지 자료와 연구와 견해를 풍부하게 가미한 대중교양서였다. 

 

2007년과 2012년에는 ‘경주 교촌 최씨’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최부잣집은 ‘경주 교촌 최씨 고택’이라는 유형의 공간이 있다. 덕분에 더욱 조명될 수 있었다. 최씨 고택과 교촌 마을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조명은 불가능했다. 최씨 고택이 있어 문화마케팅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유서 깊은 경주 최씨 고택은 1960년대에 본 모습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급기야 1970년 화재로 사랑채 등 주요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지자체와 경주 시민들의 노력으로 되살아났다. 2000년대 교동 한옥마을 정비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2006년경 최씨 고택이 복원되었다. 교동 마을 전체가 관광명소의 꼴을 갖추었다. 

 

2008년 KBS에서 ‘한국사 傳(전) -12대 400년 부자의 비밀, 경주 최부자’(49분, 8월 2일)가 방송되었다. 최부잣집에 관한 모든 콘텐츠를 참고하여 제작했다. 유튜브에 따르면 2026년 6월 현재 조회수가 367만 회다. 착한 댓글이 2500여 개 달려 있다.  

 

결정적으로 대중에게 최부잣집을 각인시킨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였다. KBS 1TV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명가(名家)’(16부작, 2010년 1월 2일~2월 21일)였다. ‘경주 일대의 명문가였던 경주 최씨 일가의 시조 격에 해당하는 최진립(김영철 분)과 만석꾼 최국선(차인표 분)의 이야기’. 시청률은 낮았지만 최부잣집을 전 국민에게 알리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 다음부터는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만한 상황이 펼쳐졌다. 인터넷에 최부잣집을 이야기하는 갖가지 글이 넘쳐났다. 물론 대개 다른 이의 것을 베껴 쓰기 한 수준에 그쳤다. 후속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최부잣집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늘었다. 기자와 블로거들의 취재기도 수두룩해졌다. 유튜브가 대중화된 뒤에는 각종 답사 콘텐츠도 늘어갔다.  다만, 두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책 안 읽은 세상이 되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래도 유명해지기는 했다. 꽤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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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교촌마을 그림지도. /김종광 작가 제공

여러 요인에 힘입어 ‘최부자 아카데미’가 2012년에 완공되었고 2014년에 개장했다. 아카데미는 “최부자가(家)의 철학과 리더십을 통해 나눔과 상생 정신을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교촌마을과 최부자댁은 외국인도 다수 들르는 저명한 관광코스가 되었다. 최부잣집을 체험한 이들의 문서와 영상도 인터넷을 채워갔다. 

 

책은 아니지만 특별히 언급해야 마땅한 논문도 나왔다. 무려 박사학위 논문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의 음·양택 풍수입지 분석’(양삼열, 2018, 대구가톨릭대학교)이다. 제목에 있는 그대로 풍수지리와 연관 지어 최부잣집의 12대 400년을 연구한 역작이다. 

2006년 이후 ‘최부자’ 혹은 ‘최부잣집’이 들어간 책이 10여 권쯤 더 나왔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은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예술과마을, 2025년 1월)이다. 절반은 그림 풍성히 들어간 어린이 책이다. 책 안 읽는 어른들은 잘 몰라도, 책 좀 읽은 어린이들에게는 익숙한 ‘최부잣집’이다. 

 

2018년부터는 초등학교 교과서 ‘국어 4-1 가’(미래앤)에도 실렸다. 이제 어른들은 몰라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모두 아는 최부잣집이 되었다. 또한 2018년엔 기념비적인 책이 하나 더 나왔다. 경주 최부잣집 주손인 최염 선생이 구술한 책이다. 그 책 ‘The 큰 바보 경주 최부자’(박근영 정리, 2018, 두두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주 이야기할 것이다.

이미 많은 최부잣집 이야기가 있는데, 왜, 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경주 최부잣집 나눔 400년’ 이야기는, 경주 최씨 가문이 400년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했는지 살펴보는 생생한 기록이고자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베풀기는커녕 망나니짓을 일삼는 부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대중의 인식이 반영되어 영화‧드라마에 나오는 권력자 중에 공정한 나눔가라고 할 만한 이가 매우 드물다. 대체 우리나라에 나눔 부자가 있었나?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겨웠다.  

 

그렇게 씁쓸해하던 대중은 최부잣집의 적선을 알게 되자 열광하고 추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한 부자가 있었다! 모든 재산을 바쳐 침략자와 싸웠던 부자. 농민‧노비와 함께 굶고 함께 배부르고자 했던 부자.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부자. 그 혹독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의 후원자로 살았던 부자. 나라가 새로 선 뒤에는 남은 모든 재산을 교육에 바쳤던 부자. 한두 명도 아니고 400년 동안 10여 명의 부자가 있었다. 그것도 한 집안에.

 

그간의 콘텐츠들이 최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상적 측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밝혀놓았다. 하지만 최씨 나눔 부자들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되지 못했던 듯하다. 

필자는 기왕에 있었던 이야기들에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해볼 작정이다.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지 추적할 것이다. 고증도 해볼 작정이다. 기존 콘텐츠에서 쏙 와 닿지 않아 아쉬웠던 이야기들. 영화·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꾸며보려고도 했다. 최부잣집의 근대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갈 작정이다. 기존의 콘텐츠에서는 보기 어려운 최부잣집이 등장하는 신문 기사를 적극 활용할 구상이다. ‘신문으로 보는 최부잣집의 나눔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김종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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