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는 언제나 현명하다.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도 그 결과에 늘 무릎을 친다. 시대를 관통하는 통렬한 경고를 날리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절묘한 구도를 만들어준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그럼에도 정신이 번쩍 드는 죽비 소리를 만들어 냈다.
실제 결과와 다른 출구 조사가 착시를 가져왔다. 폭망했다고 주저앉았던 국민의힘은 기운을 차렸다. 기고만장하던 민주당은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결과는 분명하다. 국민의힘의 참패다. 민주당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어정쩡한 승리다. 상대의 잘못으로 덩굴째 굴러온 호박을 발로 차버렸다.
지난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12곳, 민주당이 5곳을 차지했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4곳, 민주당이 통합된 전남광주를 포함해 12곳을 이겼다. 4년 전과 비교해 부산·인천·대전·울산·세종·강원·충북·충남 등 8곳을 빼앗겼다. 부산 시장을 빼앗겼고, 대구 시장까지 위협받는 지경으로 쫓겼다.
기초단체장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145 대 63에서 95 대 119로 역전됐다. 국민의힘은 50곳을 잃었고, 민주당은 56곳을 더 차지했다. 광역의회도 국민의힘이 다수당이었던 서울·경기·인천·대전·강원·충북을 민주당에 내줬다. 국민의힘은 잃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전(善戰)했다고 자위하는 것은 염치를 모 르는 짓이다.
국민의힘은 후보자들과 당 지도부가 따로 움직였다. 많은 후보가 장동혁 대표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 대표가 아닌 다른 인사들로 혁신선거위를 꾸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장 대표는 오히려 자신을 위원장으로 한 원탑 선대위를 밀어붙였다. 오 시장은 자체 선대위를 만들어 선거를 치렀다. 장 대표가 ‘윤 어게인’ 노선을 고집해 비영남권 후보들은 장 대표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당내 갈등이 민주당과의 대결을 압도했다. 반 장동혁 세력을 쳐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듯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에서 압승한 것과 달리 국민의힘은 폭삭 망했다.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대응을 더 닮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쳐내려 했고, 부산에서 당선된 한동훈 후보도 쳐냈다.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을 후보로 내세웠다. 열세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더라도 단일화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 하정우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이런 체제로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넘겨줬다. 어정쩡한 반(半)영남만으로 정권을 잡을 수 없다. 패배의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통렬한 반성, 개혁이 따르지 않으면, 더 이상 보수 유권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그나마 버틴 것은 민주당의 오만 때문이지, 국민의힘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민주당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압승할 수 있는 선거를 스스로 주저앉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연일 지난 정부 때리기 캠페인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스스로 덫에 묶여 있었다. 선거 초반은 물론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을 석권한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만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는 입법을 추진했다. 선거는 압승한다고 자만했다. 국민이나 당을 위한 것도 아니다. 권력자에게 아부해 입신양명하려는 간신배들의 헛발질이다. 보수 세력이 결집할 빌미만 제공했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가 화들짝 놀라 자제를 요청했지만, 듣지 않았다. 집권당은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언제까지 ‘내란’을 파먹을 건가. 시민은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를 원한다.
유권자는 국민의힘에 분명히 경고했다. 회초리를 들었다. 그래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살려놓았다. 바뀌지 않는다면, 버릴 수밖에 없다. 민심의 풍향은 언제든 방향을 돌린다. 다수의 힘만 믿고,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언제 몽둥이로 맞을지 모른다. 지방선거 결과가 4년 만에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졌다. 민심은 무섭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