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비산복지관의 호칭투표
대구 서구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실시한 작은 투표가 지역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흔히 당연하게 사용해 온 ‘어르신’,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을 선택하도록 한 이색적인 시도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금화복지재단(이사장 신경용)이 위탁 운영 중인 대구 비산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은 지난달 13일부터 18일까지 6일간 복지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호칭 투표’를 실시했다.
이번 투표는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노인복지 현장에서는 연령과 관행에 따라 ‘어르신’,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사용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과연 모든 이용자에게 편안하고 존중받는 느낌으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비산노인복지관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복지관 측은 “호칭은 단순한 부름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와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언어”라며 “이용자 스스로 원하는 호칭을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존엄성과 참여권을 존중하는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투표 결과는 흥미롭게 나타났다. 전체 참여자 404명 가운데 ‘회원님’을 선택한 사람이 184명(4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어머님·아버님’ 101명(25%), ‘어르신’ 82명(20%), ‘선생님’ 37명(9%) 순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비산노인복지관은 앞으로 이용자 호칭을 ‘회원님’으로 통일해 사용할 예정이다.
특히 ‘회원님’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점은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부르는 호칭보다, 복지관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노년층 역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기 이전에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이며,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권덕환 비산노인복지관장은 “누군가에게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익숙하고 편안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회원님’이나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더 존중받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각자의 선호를 존중하는 것이 이용자 중심 복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투표는 단순히 호칭 하나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복지관 이용자와 종사자가 함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상대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일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도는 복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굳어져 온 언어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이에 따라 일부 기관에서는 ‘선생님’, ‘회원님’, ‘고객님’ 등의 호칭 사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류한국 서구청장 역시 “이번 호칭 투표는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이용자 한 분 한 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존중과 공감이 살아있는 노인복지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비산노인복지관의 이번 ‘호칭 투표’는 거창한 예산이나 대규모 사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 속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의 품격이 담겨 있다. 작은 호칭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관계의 변화가 결국 복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도는 노인복지 현장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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