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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의 선물’ 찾으러 떠난 영월 여행기

등록일 2026-05-27 18:28 게재일 2026-05-2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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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풍경.

한동안 영화계는 물론 사람들 마다 어린 임금님의 이야기가 화제였다. 어린 시절 드라마에서 본 단종은 그저 작고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대신 한명회의 존재는 드라마로 제작될만큼 위상이 대단한 시절이었다. 세월 따라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더니 음지가 양지가 되듯 서글펐던 어린 왕의 이야기가 온 나라를 달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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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탑.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영월로 향했다. 청룡포에 9시 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줄이 길었다. 온라인상에는 9시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현장에선 8시부터 배를 운행한다 했다. 관광객 수가 너무 많아 편의상 변경된 듯했다. 서둘러 줄을 서고 돌아보니 얼마 되지 않아 임시 주차장까지 줄이 이어졌다. 전날 영화를 본 탓인지 물을 건너는 내내 그리고 청룡포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유배생활동안 거처한 어소가 재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1763년에 세워진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있다. 영조의 친필로 세겨진 비로 단종이 계셨던 실제 터를 나타낸다. 밖으로 나오자 비극적인 생을 내내 말없이 지켜봤을 관음송이 보였다. 수령 600살로 추정되는 나무다. 언덕을 올라 조금 걷자 망향탑이 나타났다. 망향탑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떠올리며 쌓아 올려 만든 돌탑이라고 한다.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높은 산만 가득한 곳에서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내내 바라봤을 마음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금표비가 보였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영조 2년에 세워졌다는 비석이다. 한편에선 청룡포가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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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걸음으로 옮겨 다시 배를 탔다. 장릉으로 향했다.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차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길가엔 마을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모형들이 놓여 있다. 겨우 주차를 하고 나니 장릉의 능사인 보덕사 근처다. 아미타불을 모신 본당인 극락보전에 들러 절을 올렸다. 가족의 안녕을 담은 절 두 번에 왕이 더는 외롭지 않고 편히 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절을 한 번 더 올린 다음 밖으로 나왔다. 절 내부에 위치한 유치원과 고종 19년 1882년에 세워진 해우소가 이색적이었다. 장릉 입구에는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가 모셔진 배식단사가 있었다. 외에도 엄흥도를 기리는 정려각, 1516년 노산묘를 찾은 영월군수 박충원을 기리는 낙촌비각, 1791년 영월부사 박기정이 단종의 넋을 기리고자 만든 영천 등이 있다. 조금 남아 있던 구름마저 개이자 묘역 주위가 환해졌다. 사람들의 촬영으로 능 앞은 빌 틈이 없었다. 장릉을 나서 다음에 이른 곳은 선돌이다. 단종이 유배길에 잠시 쉬어가서 유명해진 곳이다. 알았을까? 막막한 슬픔으로 가득찼던 유배길이 사람들이 이리 찾게 되는 명소가 될 것을.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 아래로 뗏목이 지나고 있다. 한반도 뗏목마을 영농조합 법인에서 운영 중이다. 뗏목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근 채 이동이 가능해 더욱 신났던 곳이다. 친절한 뱃사공을 비롯 주차장 관리인까지 영월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친절했고 말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 엄흥도가 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더 없이 만족스런 여행이 되었다. 마음씨 고운 이들에게 어린 왕의 선물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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