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공지능(AI) 이야기를 모르면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뉴스에서도, 회의 자리에서도, 일상 대화에서도 AI는 빠지지 않는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데, 정작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는 장면은 드물다. 따라오라는 말은 많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기술은 분명 편리해졌다. 행정도, 업무도, 정보 접근도 훨씬 빨라졌다. 그러나 그 편의성이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전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적응하지만 누군가는 질문을 포기한 채 변화의 뒤편에 남는다. 모른다는 말이 뒤처짐처럼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변화는 점점 부담이 된다. 인간의 적응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라기보다 그 기술을 사회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그 변화가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뒤로 밀린다. 적응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조건처럼 주어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속도가 아니라, 이 변화에 누가 함께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결국 우리가 AI를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고자 하는지로 이어진다.
AI를 단순히 더 빠른 도구로 쓸 것인지 아니면 이해를 돕는 역할로 사용할 것인지는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분명해진다. 전통기록유산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문으로 쓰인 문서와 낯선 형식은 많은 사람을 기록 앞에서 멈춰 서게 만든다.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볼 수 있음’과 ‘이해할 수 있음’ 사이의 거리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전통기록유산을 AI가 해석해 준다면 어떨까. 대신 읽어주고, 표현을 풀어주고, 맥락을 짚어 주며 기록 속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돕는 존재 말이다. 이런 AI는 단순히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기록 앞에서 질문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뒤처지기 쉬운 사람들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오는 기술이다.
전통기록유산을 해석해 주는 AI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AI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미 익숙한 사람을 더 앞서가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해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선 사람을 다시 연결해 주는 기술이다. 전문가만 접근하던 기록을 누구나 질문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AI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처음 접하는 사람도 내용을 묻고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디지털 전환은 완성에 가까워진다.
이런 AI라면 좋겠다. 변화의 속도 앞에서 발걸음을 늦춘 사람에게 설명을 건너뛰지 않는 기술이라면, 그 자체로 역할이 충분하지 않을까. 전통기록유산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AI의 모습은 디지털 시대에 기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앞서가는 사람만을 위한 속도가 아니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 그 지점에서 AI의 가치는 분명해진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국학기반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