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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투리, 세 키

등록일 2026-05-20 18:38 게재일 2026-05-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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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수필가

휴대폰 카톡방에 문자 하나가 올라왔다. 수필 동인 중 한 분이 ‘키’라는 단어가 포항사투리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식당에 갔을 때 직원이, “몇 명이세요?”라고 물어봐서 “세 키요.”라고 대답했는데 상대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외계인 취급하더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언어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질문한 선생님은 포항 토박이였다. 그는 평소에도 무심코 쓰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순간 카톡방 사람들은 모두 익숙한 듯 낯선 말을 붙들고 각자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단어 하나가 추억 매개체가 되었다. 카톡방 사람들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이었기에 사투리에 얽힌 저마다의 기억을 흔들어 깨웠다. 누군가는 본인도 ‘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처음 듣는다며 웃었다. 나도 궁금해서 얼른 검색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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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밭 속 세사람을 부르는 사투리, 세 키요! /정미영 제공

경상도 특히 경북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말이란다. 예전부터 곡식의 양을 세는 단위를 ‘키’라고 했다. 예를 들어 볏단 한 키, 두 키, 하던 개념이 사람의 묶음 단위로 확장되어 사람 수를 세는 말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있었다. 읽는 순간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구나. 곡식의 단을 묶는 단위가 사람에게 옮겨 붙은 것이었구나.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들판에서 볏단을 세듯 사람도 그렇게 세었던 것이다. 농경문화가 언어와 연결된 대표적인 경우였다.
 

생각해 보면 참 정겨운 말이었다. ‘세 명’이라 하면 그냥 숫자지만 ‘세 키’라고 하면 왠지 볏단처럼 단단히 묶인 사람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밥을 먹으러 온 세 사람이 마치 하나의 단으로 묶여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논과 밭에서 쓰였던 말들이 하나둘 연상되었다.


내 어린 시절 외갓집 마을 경치도 마음속에 한꺼번에 번져왔다. 논두렁 끝에서 어른들이 새참을 먹으라고 이웃을 불렀던 소리, 담장 너머 옆집 할머니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했던 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두 키요.” “세 키 왔심더.”
 

그때는 그 말이 특별한 줄 몰랐다. 사람 수를 세는 말 속에 볏짚 냄새와 들판의 바람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도. 도시는 숫자로 사람을 세지만 옛말은 사람을 ‘묶음’으로 기억했던 것 같다. ‘한 키’라는 말 속에는 낱낱이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사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세 명’보다 ‘세 키’가 더 따뜻하게 들린다. 한 덩이 볏단처럼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키’라는 사투리 덕분에 나는 오래된 단어 하나를 다시 주워든다. 사라져 가는 사투리 하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오래 묻어 있는 말 한 조각.
 

언어는 흘러간다. 어떤 말은 남고 어떤 말은 사라진다. “세 키요.”처럼 농경의 냄새를 품은 말은 도시의 문법 속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간다. 어쩌면 우리는 언어 속에 담긴 지역 생활의 풍경과 유대감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때때로 사투리를 붙들고 싶다.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이 가득 담긴 그 말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사투리에는 지역 사람들의 숨결과 공동체적인 삶의 온도가 함께 스며들어 있기에. 

 

/정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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