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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던 이틀 고마운 손길들

등록일 2026-04-08 16:02 게재일 2026-04-0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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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보건의료원 전경. /청송군보건의료원 홈페이지

지난 수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보러 오기로 했다. 농사일로 바쁜 가족들과 시골에 상주할 수 없는 내 형편을 생각하면 더는 집에서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날은 미리 알아본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면담한 뒤 필요한 검사를 마치면 바로 입소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고비였다. 요양원 직원이 어머님의 손목을 보더니 수술 부위에 금속이 튀어나와 있고 곪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여다보았다. 붕대가 풀어진 사이로 쇠가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직원은 이 상태로는 입소가 어렵다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119에 신고해 응급차를 불렀다.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어머님의 상태를 꼼꼼히 묻고 안전하게 모신 뒤 먼저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구급대원이 이미 접수까지 마쳐두었다.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의사는 소독과 깁스만으로 충분하다고 안심시켰다. 다시 사설 응급차를 타고 청송군보건의료원으로 향했다. 
 

검사 후 입소 전까지 하룻밤을 머물게 된 청송군보건의료원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님은 기력이 없었고, 설사까지 계속하셨다. 의료원의 간호사들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소독하고, 상태를 살폈다. 특히 인심 좋게 생긴 야간 근무 간호사는 두 시간마다 와서 필요한 처치를 해주었다. 어머님이 거친 말씀을 하셔도 “미안해요, 할머니”라며 웃어넘기는 그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한 마음에 혼자 애쓰는 내게 “꼭 자기를 불러달라”던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다음 날 검사 결과가 좋아 요양원 입소가 가능했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며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요양원 측이 어머님의 자궁하수를 문제 삼았다. 또다시 119구급차를 불러 안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두 번째 구급차였다.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며 친절하게 소견서를 써주었다. 요양원은 염증 수치 등을 이유로 입소가 어렵다고 했다. 늦은 밤, 다시 집으로 모셔야 했다. 사설 응급차를 기다리며 몇 군데 요양원에 급히 전화를 돌렸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존 요양원에도 다시 연락했다. 결국 소견서를 확인한 원장이 다음 날 아침 다시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요양원 직원들이 집으로 왔다. 어머님을 차에 모시고 가며 나는 밥 잘 드시고 직원들 말씀 잘 들으시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말씀드렸다. 마침내 입소 절차를 마쳤다. 오후에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님이 점심 죽 한 그릇과 반찬까지 잘 드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이틀 동안 두 번의 119구급차, 두 번의 응급실, 여러 번의 검사와 이동. 몸도 마음도 바닥이었지만, 그 시간마다 누군가의 친절한 손길이 있었다. 신속하고 차분했던 구급대원들, 환자와 보호자를 끝까지 배려해 준 청송의료원 간호사들, 마지막까지 방법을 찾아준 의료진과 요양원 관계자들. 그분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전쟁 같던 이틀을 건널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가족의 힘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제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손길이다. 그 다정한 손길들이 있었기에, 지치고 두려웠던 시간 끝에서 나는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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