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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시민은 왜 ‘선거일의 주인’에 머무는가”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4-03 08:42 게재일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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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로 권력 구조 바꿔야”··· 한국 민주주의 대안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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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람북 펴냄, 정정화 지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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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정정화 교수는 저서 ‘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국민의 실질적 정치 참여 부재를 비판하며, 추첨제로 시민을 선발해 전문가와 숙의하는 ‘시민의회’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지만, 현실에서는 국민이 헌법 개정이나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투표로 대표자를 뽑는 것 외에 정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채 ‘선거일만의 주인’으로 전락한 현실.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정정화 교수는 신간 ‘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파람북)에서 “대의민주주의는 본래 한계를 가진 시스템”이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지적했듯,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은 결국 엘리트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쉽습니다. 한국 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제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죠.”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시민의회’다.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을 갖춘 시민을 추첨으로 선발해 전문가 의견을 듣고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정책을 결정하는 제도다. 이는 고대 아테네의 500인 평의회가 추첨제로 운영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는 귀족정의 원리, 추첨은 민주정의 원리”라 규정했다. 한편 미국의 독립 과정에서 선거제가 도입된 배경에는 “재산 없는 다수로부터 재산을 보호하려는 엘리트의 의도”(제임스 매디슨)가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시작된 시민의회는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국으로 확산됐다.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숙의한 뒤 정책 권고안을 제시하는 이 제도는 각국에서 구체적 성과를 보였다. 아일랜드는 시민의회를 통해 낙태 합법화·동성혼 허용 등 사회적 쟁점을 국민투표로 해결했으며, 프랑스는 ‘기후시민의회’를 운영해 권고안을 법제화했다. 벨기에 독일어공동체는 세계 최초로 상설 시민의회를 설치해 정기적으로 입법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고 있다.

반면 한국은 12·3 내란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치권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정치권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1987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헌법, 번번이 무산되는 선거제도 개혁은 ‘제 머리조차 깎지 못하는’ 국회의 한계를 보여주죠.”

책의 핵심은 제3부 ‘시민의회 설계와 운영 방안’이다. 시민의회는 인구통계학적 대표성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해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선거 대의제와 별도로 의회를 구성해 숙의하는 의사 결정 방식이다.

저자는 층화추출 방식의 시민 선발, 3~12개월 운영 기간, 전문가 청취와 소그룹 토론 등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헌법 개정 시 시민의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22대 국회에는 4개의 개헌 절차 법안이 계류 중인데, “제7공화국은 기득권 정치인이 아닌 시민의 숙의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 적용 가능성으로는 읍면동 단위의 주민의회나 청소년 시민의회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 확장,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시민 참여 모델을 제시한다. 다만 “시민의회가 정당과 이익집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2016년 촛불혁명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선언했지만,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저자는 “시민의회는 단순한 참여 확장이 아니라 권력 구조 자체를 바꾸는 혁명적 전환”이라고 말한다. “선거로 뽑힌 대표와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이 입법권을 공유한다면, 이는 진정한 ‘일반의지’의 구현이 될 것입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입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죠. 시민의회는 시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을 제시합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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