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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계의 닻, SDGs와 지정학적 격랑

등록일 2026-03-31 08:55 게재일 2026-03-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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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보름째 계속되고 있다. 압도적 무력을 내세운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당초의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확전될 기세이다.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지구촌 전체의 안보와 경제 지형을 흔들고 있다.  

역사상 모든 전쟁이 그렇듯 전쟁은 언제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에서 시작되지만 전쟁의 당사국뿐 아니라 인접국과 여러 나라들에도 전쟁의 영향이 미치게 된다. 이 전쟁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이라는 국경에서 시작되었지만 전쟁의 대가는 결국 세계 전체가 치르게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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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공급망과 지정학적 위기 관계도. AI로 생성한 이미지. /서득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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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공급망과 지정학적 위기 관계도. AI로 생성한 이미지. /서득수 제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시작된‘예측불허’와‘일방주의’로 대표되는 트럼피즘에 따른 이란에 대한 전쟁은 인류가 합의한 미래의 이정표인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지금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우리에게 SDGs는 단순히 환경 보호나 사회적 책임을 넘어, 국가와 기업이 생존을 위해 공유해야 할 ‘세계 질서의 닻’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격랑과 그 배후에서 힘을 얻고 있는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이 닻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국지전을 넘어섰다. 세계 경제의 핵심 에너지원인 석유 유통을 옥죄는 전략적 선택으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현실화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단순히 국경선으로 나뉘지 않는다. 경제 블록의 재편, 기후 위기라는 공동의 숙제, 그리고 급변하는 기술 패권 경쟁까지 마치 거대한 체스판처럼 모든 행보가 서로 얽혀 있다. 즉, 특정 국가 또는 지역에서의 분쟁이 그 국가와 지역의 국경을 넘어 연쇄적으로 여러 나라들에 미치고 세계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제유가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이후 이미 10% 넘게 급등했는데,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항로 차단이 현실이 될 경우 유가가 더욱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는 세계 경제 전체에 엄청난 악재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이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마비는 세계 경제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혹한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에너지 안보는 국가 생존의 문제이며, 당장 눈앞의 유가 급등과 물류 대란 앞에 ‘기후 위기 대응’이나 ‘탄소 중립’이라는 거창한 담론은 사치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에 기반한 장기 투자다. 하지만 지금의 지정학적 불안은 모든 예측 모델을 무력화하고 있다. 자원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안보가 경제를 집어삼키는 상황에서 국가와 기업들은 ESG 투자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위한 ‘전시 경영’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우리가 쌓아온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탑이 전쟁이라는 현실의 화염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기조는 단순히 자국 우선주의를 넘어, 전후 세계 질서를 유지해 온 다자주의와 국제 규범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로 나타나고 있다. 전쟁의 명분조차 모호한 이란에 대한 전쟁의 시작은 미국 우선주의와 자국 우월주의 ‘트럼피즘(Trumpism)’의 결과일 뿐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 파리기후협약 탈퇴 시도, SDGs 이행을 위한 데이터 수집의 중단, 그리고 힘에 의한 일방주의적 이란 침공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붕괴를 예고한다. 트럼피즘의 본질은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s)’에 대한 투자 비용을 기회비용으로 간주하고, 이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ESG가 기업의 선택을 넘어 시장의 규범으로 자리 잡던 흐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가치보다 이익”이라는 전쟁의 메시지는 규제와 제도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이끌어내려던 기존의 ESG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평화라는 함대를 이끌던 ‘규범의 닻’이 뽑히는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침공(Operation Epic Fury)과 거침없이 몰아치는 ‘트럼피즘’의 광풍은 국제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규범 기반의 질서(Rule-based Order)’라는 닻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작금의 사태는 우리에게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규범이 사라진 정글에서 우리는 안전할 수 있는가?” 세계 질서의 닻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침몰하는 것은 한국과 같은 대외 의존형 중견 국가들이다. 우리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인류 공통의 규범인 SDGs를 다시 세우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지속가능성’이라는 규범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해야 한다. 지금의 혼란은 낡은 질서가 저물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진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진통의 끝이 황폐화가 될지, 아니면 더 견고한 질서의 재편이 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닻이 흔들린다고 배를 버릴 수는 없다. 폭풍우가 거셀수록 우리는 더 깊이 닻을 내려야 한다. ESG는 여전히 인류가 가야 할 유일한 생존의 좌표이기 때문이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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